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 해가 밝았다. 호랑이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공존하면서, 인간의 생활문화속에 깊숙이 자리잡아 다양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인간을 위협하는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용맹과 신성함의 상징으로서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치거나, 질병과 재앙을 막아주는 신령스러운 수호신이기도 했다.

음양오행설과 관련된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천간지지(天干地支)중 십이지(十二支)에서 호랑이는 쥐, 소에 이어 세번째를 차지하고 있고, 사신도에서는 흰색 호랑이 백호(白虎)가 서쪽을 지키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각종 민화와 부적에도 호랑이는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호랑이가 우리의 오랜 역사적 상징으로 함께 해 왔다는 결정적인 증좌는 단연 고대 단군신화를 들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은 4,3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한민족과 함께 해 오면서, 88서울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마스코드인 호돌이와 곰두리가 됐고, 이것이 다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백호)과 반다비(반달가슴곰)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호랑이는 근대에 와서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멸종상태를 맞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현재 전 세계 호랑이 개체수를 약 3천마리 내외로 추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초 경북과 강원 등지에서 포획된 개체가 마지막 야생호랑이로 알려져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1920년대 호랑이 숫자가 10만 마리였던 것이 지금 3천 마리밖에 남지않은 반면, 1920년대 20억명이던 전 세계 인구수는 지금 80억명으로, 지난 100년동안 호랑이는 97%가 사라져 멸종위기종이 됐고, 인간은 400%나 폭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이다. 현재 농촌에서 발생하고 있는 야생 멧돼지와 고라니에 의한 심각한 농작물 피해도 최상위 포식자가 없어진 결과이며, 멧돼지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최근 강원과 충북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치사율 100%의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뒤늦게 세계 호랑이의 날(7월 29일)을 만들어 야생호랑이 복원에 힘쓰고 있지만, 자연의 섭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성공여부는 미지수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암 박지원이 쓴 한문 단편소설 '호질(虎叱)' 은 소설 제목처럼 호랑이가 인간의 아첨, 간사함, 표리부동 그리고 특히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을 꾸짖고 있다.

호랑이가 인간인 북곽선생(北郭先生)을 꾸짖기를 "너희 인간들은 메뚜기의 식량을 뺏고, 누에의 옷을 빼앗고, 벌의 단 꿀을 훔치며 (중략) 같은 조화물이 그 천지생물의 의리를 말한다면, 사람이나 호랑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개미 할 것 없이 서로 생활하여 서로 해쳐서는 안 되는 법이다"

또한 "너희들 인간이 잡아먹는 것은 어찌 그렇게도 어질지 못하느냐? 함정을 파서 잡는 것도 부족해서 여러가지 그물로 새나 물고기를 깡그리 잡아 먹으니 (중략) 그 잡아먹는 꼴이란 너희 인간들보다 더 심한 것이 어디 있으랴."

지금 우리에게 닥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도 그 근본 원인이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에서 유발된 것이기에, 호랑이에게 또다시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면 욕심을 줄이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절제된 생활습관으로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

지금은 호랑이보다 바이러스가 훨씬 더 무섭다. 바이러스가 꾸짖기 전에 정신 바짝 차리고,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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