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 .TV] 오도석 성천문화원장 힐링대담
[불교공뉴스 .TV] 오도석 성천문화원장 힐링대담
  • 이한배
  • 승인 2021.11.18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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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코로나19로 힘겨운 이 시대에 종교가 할 일은 무엇이며 개인이 할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상황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국가 전체의 재난사태거든요.
무엇보다, 장자가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보이는 몸 나, 보이는 나는 때가 되면 죽는다는 거에요. 죽으면 내려놓는다는 거에요. 명예도, 돈도, 땅도, 부도, 자식도, 가정도 내려놓는다는 거에요. 저는 사람이 죽어서 내려놓는다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아서 하심한다면, 살아서 내려놓는다면, 나는 그를 성자로 보고 성녀로 봅니다.

이런 사태 속에 가진 자들이, 또 정책적으로도,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또 진정한 국가는 국민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사람들에게 대한 대우가 그 국가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이런 때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특별히 종교가 건물을 짓고 교육관을 지을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필요하면 모르지만, 대다수 종교가 큰 건물을 짓고, 교육관을 짓고, 그 다음은 장례터를 짓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종교로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종교의 '종'자가 '용마루 종(宗)'자입니다.

가장 높은 의식의 학문을 가진 것을 종교라고 그러잖아요. 이제는, 지금 누구든지 절망 상태 속에 있을 때 가진 것을 나눈다면,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기운이 생기잖아요. 이제 정말로 불성과 영성을, 그 깨달음을,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것을 복지와 섬김, 나눔으로 행할 때가 아닙니까. 비자도 없이 처들어오는 코로나19, 이 악한 기운을, 이렇게 선한 기운을 만들면 나는 분명히 해결된다고 봅니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백신을 맞는 것은 상식이잖아요. 우리가 상식도 안되면 안되지요. 더 나아가 상식을 초월하여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나눈다면 코로나는 별 것 아닙니다. 틀림없이 그 선한 기운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자생력이 강해져서 바이러스도 이기는 힘, 이 나쁜 집단적 무의식을 제거하고도 남는 행복의 동산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가진 분들, 그리고 정책적으로 절반의 몫을 떼세요. 그리고 나누세요. 정신세계가 너무 어리면 땅을 사고 집을 사고 내 가족, 내 것으로 모읍니다. 정신세계가 조금 성장하면, 함께 사는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진정한 불성이고, 진정한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2] 성천문화원의 작품들이 너무 아름다운데 만드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저를 비롯해 서로를 형이라 부르는 장형들이 50여명이 있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 다같이 머리 깎고 같은 생활을 하는데, 불교로 말하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저 피안으로 가자', 그런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 문화원의 작품이 전부 약 5천점 됩니다. 그림, 수석, 중국도자기, 홍산문화 옥기, 분재 등 모두 함께 손수 다 이루었습니다. 독일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아름다움과 의식과 형상들과 형체를 영원의 언어와 글씨와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이 모두가 불성이고 불심이라는 거에요. 기독교로 말하면 하나님의 언어고, 모습이고, 글씨라는 거지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시'라고 합니다. 그 말은, 벽이 있어 그 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벽을 다 헐었더니 그 뒤의 내용이 공개되고, 드러내고, 나타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형상들과 색(色), 아름다움을 역으로 추적하면 '공(空)'입니다. 공은 존재 근원입니다. 알 수 없는 무한한 공을 물리에다가 나타내서, 드러내서 볼 수 있는 것을 아포칼립시스, 계시라고 합니다. 성천문화원은, 내 자신과 장형들은 상하가 아니고 평등입니다. 그래서 말도 놓고 지내고, 여자분들도 다 '형'이라고 부릅니다. '입 구(口)'에 '사람 인(人)', 이 '형 형(兄)'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맏형이 아버지를 대신해 입을 열어 아우들을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확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날 깨달음을 가졌다면 깨달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입을 열어 생명을 섬기고 돌본다는 의미의 '형'들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작품은 우리 모두가 대가를 지불했고, 저를 비롯한 우리 장형들의 내면의 세계, 마음, 영(靈), 이 모든 게 공과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세계는 '무시무종'이라, 알 수 없는 시작부터 있었고 소리도 모양도 없지만, 우리가 말을 하잖아요. 뜻이 몸에서 일어나니 '계심'입니다.

그 내면의 세계를 아무 가림 없이 다 드러내고 보여주고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5천여점의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 성천문화원의 모습이고 언어이고 글씨입니다. 이렇게 한 목적은 역사 속 르네상스 문예부흥이 사람의 이성을 높이고 과학이 발달해서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것이 없어지고 신 중심의 세상이 인간 중심으로 전환되는, 그리고 우리가 B.C와 A.D를 짐승의 시대에서 불성의 시대와 영성의 시대로 나뉘는 역사의 분기점이라 하듯이 이렇게 계시를 통하여 사람들이 정체성을 회복하고, 본성을 회복하고, 영성을 회복하고, 불성을 회복하라고 다 드러내 버렸습니다. 그런 뜻으로 이런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질문 3] 소통과 융합이란 무엇입니까?

굉장히 쉬우면서 어려운데요. 융합이라는 게 상하관계로는 융합이 안됩니다. 모든 의식, 기체고체액체를 역으로 돌리면 원자이듯이 모든 색과 형체를을역으로 돌리면 공이고 영이듯이 근원이 같기 때문에 전부가 부처이고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상하관계가 아니라 역할은 있지만, 평등으로, 나와 스님이 문화가 다르지만 본질, 뿌리는 같아요. 융합이란 나와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에 대하여 나와 같지 않으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융합하려면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대화가 아니고 서로가 공감되도록 하는 것이 대화입니다. 그래서 융합하려면 평등과 공감이 되는 방법으로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로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 하나되는 자세라면 융합이 됩니다. 예를 들어 1+1은 2인데, 이렇게 융합이 되면 2가 아니고 1조가 되고 빅뱅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절실하게 아픈, 하늘이 기회를 주었을 때 각성하고 융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님과 저는 아무 벽이 없잖아요. 정말 스님을 대하면 마음이 열리고 감동이 되고, 이런 것이 융합입니다.

만약 말은 거창해도 거부가 오면 듣는 사람이 다 알거든요. 공감이 되는 것이 융합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되어야 하고,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해야 됩니다. 나와 다른 문화, 내가 모르는 문화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저는 다른 문화에 대해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굉장히 존중합니다. 이렇게 융합이 되면 나라가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질문 4]대자연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박경리 작가의 대작 '토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자적 의미의 땅이 아니라 큰 생명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들짐승이 죽고 나뭇잎이 떨어져 땅이 기름지고 미생물이 살아나면 거기에 곡식을 심고 수확하여 내 입으로 들어와 살과 피가 됩니다. 들짐승이 숲을 울창하게 하잖아요. 나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 토지를, 큰 생명체를 왜구에게 빼앗기는 것은 곧, 땅이 아니라 내 자신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바로 토지를 지키기 위해서,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땅을 지키기 위해서 당시 종교로 서낭당에 빌고 하는 등 박경리 작가의 정신세계가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들짐승이 먹이를 먹고 여러 군데 배설을 해서 숲을 울창하게 해서 산소가 나고 땅에 미생물이 활동하고.. 깊이 생각해보면 자연과 들짐승과 사람은 뗄 수 없는 공생관계입니다. 자연은 이산화탄소, 즉 더러움을 빨아들여 거름삼고 산소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에 이러한 자연과 들짐승에 대한 경배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너와 나와 만유가 연결되어 영원이 되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습니다. 스님이 꼭 이 시대에 필요하고, 나도 필요해서, 반드시 필요할 때에 만나는 것을 시절인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자연도 그 모든 것도 시절인연으로, 친구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질문 5]원장님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이웃이란 그 기준이 어디까지입니까?

 제 표현이지만, 몸에 세포 100조가 있는데, 하나의 세표, 그 옆의 세포도 이웃이지요. 참 광범위한데요, 옆집을 말하는 이웃이 아니라, '중용' 1장에 보면 '천명을 일컬어 ', 불성을 일컬어, 영성을 일컬어 성이라고 한다. 이 성이 '성품 성'이에요. 어떤 것도 의식이, 성이 전혀 없으면 그 형상과 형체가 해체가 돼요. 미미한 의식이라도 있어야 형상이 유지돼요. 그런데 이 만물에 나타난 수많은 형상과 형체들이 공과 영의 자아인 의식이에요. 그러니까 그 모든 의식에 대해서 저는 존중하고 경배를 표합니다. 깊이 들어가보면 너와 내가 아니고 우리입니다. 학자들이 말하길, 가장 빨리 사람이 단명하는 길은 들짐승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산업화되어 공장을 짓고, 기득권 때문에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지 못하고 하는 것들이 참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대국들이 자동차를 비롯해 수많은 것들이 넘쳐나는 반면, 약소국가들은 개발이 덜 되어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이 지구의 4분의 1을 지킵니다. 참 불행한 것은 약소국가들이 강대국을 따라 개발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지구에 산소가 부족해집니다. 우리가 의식이 있다면, 히말라야 산맥 같은 나 주변의 의식들이 다 파헤치지 않고 개발하지 않아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강대국들이 능력의 절반을 뚝 떼어서 약소국들을 도와주고 자동차도 덜 만들게 하고 자연을 지킬 수 있게 한다면, 저는 정말로 이 세상 전체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불성과 영성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6]자유민주주의 경제에서는 많이 가진 것을 능력이라고 하는데요, 이 능력을 어떻게 써야 좋겠습니까?

 저는 그 모든 기준이 지각적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에서 1+1은 2입니다. 혹 3이라고 하면 대화가 안되지요. 그러나 사실은 2가 아니고 1+1은 2라고 약속을 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0이 될 수도 있고, 같은 것을 하더라도 더 할 수도 있도 덜 할 수도 있는데, 자유민주주의에서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많이 가지는 것도 능력으로 인정합니다. 그 능력을 자신만 가진다면 그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나는 이 능력을 과감하게, 이 사회 덕분에, 직원들 덕분에 벌었으니까 이 힘을 복지와 섬김과 나눔으로 펼친다면 그것이 진정한 부자, 성공한 부자로, 진짜 능력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것을 소유하고 탐심을 부리면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나쁜 놈입니다. 저부터 실천하겠습니다.

 

[질문 7]고문으로서 창립 11주년을 맞은 불교공뉴스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서울을 가는데 길이 없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무엇보다 이 시대가 아는 것 같지만, 길이 있는 것 같지만, 길이 없어요. 길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도로가 있지만 정신의 길도 있고, 깊은 내면의 얼, 영의 길도 있는데, 사람의 본성을 나누면 의식이 일어나는 영과 정신과, 육체를 다 합쳐서 몸인데 이 의식이 정말 바른 목적을 향해서 열반을 향해서 영생을 향해서 갈 수 있는 그 길을 만들기 위해서 혜철스님도 전제적으로 사람들의 심리치유를 하고 계시잖아요.

정말 바른 정신문화를 가지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이 불안에서, 두려움에서, 혼돈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자유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면, 누구도 어느 사람의 자유도 침해할 수 없고 자유는 모든 의식이 존재하는 그 중심 바탕, 무한 영력, 무한 에너지를 자유라고 하는데,바로 길을 바르게 알 때 자유가 오고 길을 모를 때 끝없이 두려움이 일어나는데,  사람을  자유에 이르게 하는 길을 이미 제시하고 있고 또 더 확장해서 제시할 줄 저는 확신합니다.
 

[질문 8] 성천문화원 오도석원장님과 장형들이 지향하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장형은, '길 장, 어른 장'에 '형 형'- '입 구'에 '사람 인'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의식을 열어, 입을 열어, 길을 잃고 혼돈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람이 이기주의와 탐심과 폭력을 행하는 것을 역으로 깊이 추적하면 사람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그렇습니다. 그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입을 열어 생명을 섬기고 돌보고 책임지는,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장형입니다.
 

[질문 9]영원한 현재란 무엇인가요.

자그마한 파장도, 이 꽃도, 기라고 하는 것은, 공이라고 하는 것은, 영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고 또 원자라고 하는 것은 시작을 알 수 없고 끊어지지 않아요. 만약에 이것이 기에서 공에서 영에서 나와서 기체 고체 액체가 만들어 지는데, 거기에 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가 끊어지면 해체됩니다. 이것이 양자물리학인데요. 이것은 상식으로 다 아는 얘기인데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 죽고, 심판되고..그러한 시,분,초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카이로스는 그 시간 자체가 인정이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자그마한 의식과 모든 파장을 역으로 돌리면 공이에요. 영이에요. 이 공과 영의 시작을 알 수 없어서 그것을 영원한 현재라고 하고, 그것을 학문적으로는 아르케라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선재된 의식, 그 안에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의식, 영이 있어 그것이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생명확장을 위해서 움직이는 의식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그마한 파장도 그 시작이 끊어지면 해체되니까, 형상이 없어지니까, 그래서 연결된 의식으로 사람의 마음이 그 의식이 수도 없이 뛰어서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사실 대상이 아니라 깨친 마음이잖아요. 그 하나님과 부처님의 자기 완성이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이거든요. 영원한 현재를 그 전체와 연결되어 사람의 의식은, 이 몸나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으로 때가 되면 죽어요. 그런데 이 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은 그 영원한 현재의 완성된 집이기 때문에 이 땅에 열반의 씨로, 천국의 씨로 와서 끊임없이 씨 속의 씨눈이 싹을 틔워 자라 열매가 되듯이 끝없이 과거, 미래가 아니고 현재에서 영원히 새로워져서 목적에 이르는, 이것을 영원한 현재, 또는 현재에서 영원을 사는, 학문적으로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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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흥 / 불교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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