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정암사는 2021년 10월 9일과 10일 “2021년 정선 정암사 자장율사 개산문화제”를 개최한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으로 대표적인 불교성지로 손꼽히는 정암사는,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받아 귀국한 후 645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한 사찰로, 올해로 절이 세워진지 1,376년째를 맞는다.

정암사를 창건한 자장율사는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유일하게 대국통의 지위를 누렸으며, 우리나라 불교의 초석을 놓은 스님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와 신라의 법령과 율제를 정비토록 진언해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금강 계단(戒壇)을 시설해 승가의 근본을 바로 잡았다. 스님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유일무이한 분으로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받아 우리나라 다섯 곳에 적멸보궁을 시설함으로써, 우리나라 오대산신앙의 근간을 형성했다. 아울러 신라에서 발생해 현대에까지 영향을 끼친 불국토사상도 자장율사로부터 연원 하였다.

정암사는 신라땅에서도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했던 자장율사의 비원이 서린 곳이다. 꿈에서 문수보살이 정암사에서 만나자는 계시를 받고 정암사에 도착하였으나 망태를 든 촌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했다. 뒤늦게 촌로가 문수보살임을 알아차린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따랐으나 끝내 친견하지 못하고 정암사에서 생을 마쳤다.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또 입적한 곳인 정암사는 가히 자장율사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장율사의 창건의의를 기리는 정암사의 개산문화제 개최는 자장율사의 드라마틱한 삶과 불교사에서의 업적을 널리 선양하는 행사이면서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 개산문화제는 불교의식 중심의 지난해와 달리 세계무형문화유산기이도 한 영산재 이수자 스님들이 범패와 작법을 선보이는 개산재와 합동위령재, 그리고 유명 연예인을 초청 함백산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산사음악회, 고한읍 번영회 등 지역주민이 주관하는 함백산 문화공연과 친 환경 전시회 등 풍부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정암사는 2022년에는 힐링 체험 프로그램을 보완해 자장율사 개산문화제를 정선군의 대표 연례 문화행사로 정착시킬 예정이다.

정암사 개산대제 봉행의 의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바로 자장율사가 건립한 수마노탑이다. 지난해 국보 332호로 승격되어 자장율사의 유적으로는 최초로 국가문화재로 인정받은 계기로 정암사 개산대제가 봉행되었고, 정암사가 한국 불교 제1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석탑과는 달리 정암사 수마노탑은 마노석을 벽돌처럼 쌓아올린 모전석탑이다. 마노석은 금,은과 함께 칠보 가운데 하나로 치며, 이것을 지니면 재앙을 예방한다고 하여 소중히 여기는 보석이다.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도력에 감화하여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물 ’水“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한다.

본래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구해온 석가의 신물(사리,치아,염주,불장주,패연경등)을 ’세줄기 칡이 서린 곳‘에 나누어 각각 금탑,은탑,수마노탑을 모셨다고 하는데, 후세 중생들의 탐욕을 우려한 자장율사가 불심이 없는 중생들은 급탑과 은탑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게 숨겨버렸다고 한다.

수마노탑이 오늘날 새롭게 조명받는 이유는 그 정교함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바로 탑을 세운 자장율사의 마음이다. 자장율사는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 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수마노탑을 세웠다고 한다. 삼국이 분열되어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달래고,불심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올해 개산문화제에서는 수마노탑에 오르는 길을 정선군민과 불자들이 함께 걸으며 개산조 자장율사의 창건 정신을 되새긴다. 수마노탑을 향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참배행렬은 고된 삶과 지난한 역사에 지친 모든 생명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며, 행복을 기원하는 자장율사의 불심을 따르고 있다.

국태민안과 우순풍조의 기원이라는 자장율사의 창건정신은 합동위령제를 통해서도 오롯이 되살아 나고 있다. 행사기간동안 개산재와 함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 그리고 산업발전을 위한 석탄 채굴에 힘쓰다 희생한 광산노동자, 코로나19 희생자를 합동위령재가 진행된다.

합동위령제에서는 지역의 아픔과 상처도 위로할 예정이다. 정암사가 위치한 정선군 고한읍은 우리나라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광산지대로 숱한 광산 노동자들이 희생한 곳이다. 탄광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면서 정부는 강원랜드를 설립해 지역의 거점개발을 꾀했지만, 오히려 카지노와 연관한 안타까운 죽음들이 숱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지역의 상흔과 유주무주 고혼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합동위령제는 정암사 개산대제의 주요내용이 될 것이다.

정암사에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어 수백년동안 자라났다는 선장단이라는 고목이 있는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붓다를 기다리는 사람들, 치열하고 지난한 삶의 끄트머리, 섧고 사무침에 몸 둘 바 몰라하는 중생을 건져 올려 줄 구원의 지팡이 같은 곳이 바로 정암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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