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시장 박형준) 부산박물관은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이상민 씨로부터 조선 세종대 태실 유물 2점을 비롯한 총 24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기증받은 유물 중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은 <세종의 왕자 의창군(義昌君) 태지석(胎誌石)>과 <세종의 왕자 안태용(安胎用) 분청사기(粉靑沙器)>이다.

※ 의창군(義昌君) : 1428년 세종의 열 번째 아들(서자로는 세 번째)로 신빈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35년에 의창군으로 봉해졌으며, 1460년에 사망하였다.

※ 태지석(胎誌石) : 주로 사각형의 납작한 돌 표면에 생년월일, 이름, 태를 묻은 일자를 새겨 태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유물로 태실 안에 태항아리와 함께 봉안하였다.

※ 안태용(安胎用) : 태(胎)를 안치(安置)하는 데 사용한다는 뜻.

태실(胎室)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 등 왕손이 태어나면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정해 태(胎)를 묻었던 곳이다. 특히, 왕실은 태실이 국운과 직접적 관련이 있어 더욱 소중하게 다루었고, 전국팔도의 풍수 좋은 명당에 태실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전국에 산재한 명당 터를 확보하고 조선 왕실과 백성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려는 의도에서 특별한 기준 없이 전국팔도 명당에 있던 태실을 서울 근교로 옮겨와 서삼릉에 일괄적으로 모아놓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태실의 유물이 교란되고 중요한 문화재였던 태항아리가 상당수 도굴되었다.

세종의 왕자 18명의 태실이 함께 모여 있는 경북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도 명당이었다. 이곳의 태실 유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상당수가 도굴되거나 교란되어 1977년 성주군에서 보수정화사업을 진행하였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태실 유물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확인된 유물들도 국립박물관, 대학박물관, 사립미술관, 일본의 미술관, 개인 소장 등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 경북 성주 선석산 세종대왕자 태실 : 성주 선석산 세종대왕자 태실은 문종을 제외한 세종의 18명의 왕자와 손자인 단종의 태실을 한곳에 모아 조성한 곳으로 한 장소에 하나의 태실을 조성했던 조선시대 태실문화에서 보면 이례적인 곳이다.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4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문종의 태실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에 별도로 조성하였다.

현재까지 <세종의 왕자 태지석> 6점,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 7점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기증을 통해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세종의 왕자 의창군 태지석>의 명문 내용을 살펴보면 의창군은 1428년 10월 27일 묘시생(卯時生)으로 1438년 3월 11일에 태를 묻은 것으로 확인되는데, 성주 선석산 의창군 태실 비석(아기비)의 명문 중 태를 묻은 일자가 일치한다는 것을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을 통해 확인(붙임 사진 4·5, 표1 참고)되었다.

의창군은 세종의 왕자 중 1438년 3월 10일 가장 먼저 태실을 조성한 세조에 이어 두 번째로 경북 성주 선석산에 태를 묻었으며, 세조와 의창군을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1439년 이후에야 태실을 조성하였다. 현재 18명의 왕자 중 4명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세종의 왕자 안태용(安胎用) 분청사기>는 꼭지가 달린 반구형 뚜껑 모양의 분청사기로, 태항아리 전체를 덮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 구성을 4~5단으로 나누고 연꽃잎이 겹쳐진 문양을 상감기법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독특한 형태와 문양 기법, 문양 구성을 지닌 유물은 경북 성주 선석산 세종의 왕자 태실에서만 확인된다.

특히, 연꽃잎이 겹쳐진 문양과 뚜껑 중앙 부분을 삼각집선문으로 띠처럼 표현한 기법은 기존에 확인된 11점의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의 양식 중 세조의 안태용 분청사기와 매우 유사해, 세조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붙임 사진 1·2·3 참고)으로 보인다.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는 <세종의 왕자 의창군 태지석>과 함께 기증되었고, 의창군의 태를 묻은 날(1438년 3월 11일)이 세조의 태를 묻은 날(1438년 3월 10일)과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 세조의 안태용 분청사기와 장식기법 및 형식 면에서 매우 유사한 점을 유추해 볼 때 기증받은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는 의창군의 것이라고 추정되나, 확실한 증거가 부족해 향후 고증적인 자료 조사와 보완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청자완, 분청국화인화문접시 등 도자기 9점, 삼국시대 토기 1점과 19세기 일본 메이지 시대 일본화의 부흥에 이바지한 하시모토 가호(橋本雅邦, 1835~1908)의 산수화 등 19~20세기 일본화단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일본회화 8점을 비롯해 22점의 다양한 유물을 기증받았다. 한편, 이상민 씨는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부산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하였다.

송의정 부산박물관 관장은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도기 및 분청사기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던 15세기 조선 전기 장태문화(藏胎文化)를 알 수 있고 특히 세종의 왕자 태실에서만 확인되는 특정한 시기, 장소 및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향후 유물의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기존 연구성과 검토 및 비교 연구를 거친 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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