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성천(문화원)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성천(聖川)은 거룩할 성(聖), 샘 천(川), 하늘의 샘물이라는 뜻입니다. 널리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 싶어서 성천이라는 이름으로 성천문화원을 50명과 함께 설립했습니다.

Q 원장님께서는 대형교회 목사로 활동을 하시다가, 전 세계로 부흥강사로 다니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하심(下心)을 하시게 되셨는데 그 이야기 좀 듣겠습니다.

사람이 각자 체득과 깨달음이 다르겠지만, 저는 29세때 거의 이 땅에서 사형선고(죽을 고비를 넘김)를 받은 몸이었는데 의식이 소생되면서 바로 강사로 거의 전 세계를 한 20년간 뛰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여러 어떤 사역들을 하면서 ‘아! 종교가 너무 편협 적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고, 이 땅에 있는 다른 종교를 다 존중합니다. 하지만 내가 ‘특정 종교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내 삶을 축소시키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그리고 또 무엇보다 나의 마음의 이끌림이 내가 종교에서 어떤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대우받는 것이 솔직히 말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친구처럼 지낼 수는 없는가?’ 그런 어떤 고민 끝에 종교를 하심하고 이후 문화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Q 기독교계에 계실 때에 예술 활동이라든지 분재, 수석, 도자기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게 연유가 되어서 지금 성천옥션이 있는거지요?

그렇습니다. 종교에 있을 때에 조용기 목사님의 동생분인 조용목 목사님(그분 교회도 대형교회에요)이 총재를 하시고, 제가 2005년도까지 만 4년동안 우리나라 전체 문화예술 대표회장을 했어요. 문화와 예술은 그 나라의 국격이지요. 르네상스 문예부흥도 우리가 다 역사적으로 알고 있지만, 저는 철학으로도 종교로도 그 무엇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 잠자는 의식을 다시금 뛰게 하는 정신적 영적 힘이 문화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화를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 성천옥션에서 중국도자기를 경매하고 계신데요? 어떤 연유로 도자기까지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제가 세계를 다니면서 강사를 할 때 중국도자기가 영국소더비에서 100억 300억 천억까지 팔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중국도자기가 비싼가? 봤을 때, 중국이 문화혁명 때 도공과 도자기들을 없앴는데, 문화개방 때 다시 자기 문화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문화재는 단순 도자기가 아닙니다. 골동이라고 할 때 뼈 골(骨)자를 씁니다. 우리가 너무 의식이 아프고 이럴 때 ‘뼈아픈’이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에게 도자기 또는 문화재의 개념은 그 민족의 얼, 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좋은 것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분들이(중국 사람들) 가져가려고 하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도자기에 눈을 뜬 지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때는 도자기 시장이 완전히 어떤 과도기인지 혼돈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실제로 이런 의식과 철학을 가지고 도자기 만점을 샀는데 사실은 굉장히 실패를 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실패가 저를 지도력 있게 만들었지요. 다시 시장 파악을 하게 되고, 도자기의 어떤 분별도 되고 하면서 제가 한 천억을 썼을거에요.

그러나 돈은 개념이고, 어떻게든 정상적인 순환의 문화를 만들겠다, 그리고 앞으로 향후 한 100년정도는 중국의 명품도자기를 안목으로 구매했을 때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목적은 아닌데, 과정 속에 수단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큰 ‘부’라는게 멀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손안에서 움직이면서 강렬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뭔가? 그게 바로 문화이고 예술인데, 나는 중국도자기라고 인식을 하고 옥션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제가 유튜브를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경매하시다가 시청자들에게 그냥 주시기도 하고 가격이 내려가면 꾸짖기도 하는, 그렇게 경매를 하고 계시는데요. 왜 그렇게 하시는 건지 말씀해주세요.

전 세계 중국도자기 업계에 우리나라 이사국이 서울옥션이었습니다. 그런데 7년 전부터 중국의 국방부 소장이셨던 보리와 가덕을 세운 라영희 회장께서 우리 성천문화원을 전 세계 도자기업계의 대표이사국이 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제가 정말로 진품이 뭔지, 관요가 뭔지를 많이 체득하고 경험하고 또 사봤지요. 그렇게 하면서 거기에 비해서(세계시장) 한국의 중국 도자기 시장은 너무 혼돈되어 있고 가치가 정확하지를 않고 너무 무질서했습니다. 그래서 옥션을 해서 이런 질서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조금 전 말씀 중에 어떨 때는 싸게도 주고 그냥도 주고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제 개인 체득인데 저에게 어떤 에너지가(돈이라 해도 되고) 있을 때, 에너지를 많이 가져도 결국 남지도 않고, 하나도 없어도 모자라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경매에 따라, 1 더하기 1은 2가 맞는데 약속으로 2이지 원래 2는 아니거든요. 대화를 하려고, 3이라고 하면 대화가 안 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깨달음 안에서 보면 이게 백만 원이고 천만 원인데 이 사람 한 테는 10만원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어떤 영감에 민감하게 움직이는데, 그럼 어떤 부분에서 제가 손해를 볼 수 있잖아요. 근데 그것은 부처님과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에요, 손해 보는 것은. 그러니까 꼭 돌려받을 마음이 없어도 돌아와요.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합니다.

모든 텍스트(경전)가 중요하잖아요, 깨달음 안에서 기록된 건데. 저는 화엄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발견했어요. 불교가 사실은 상당히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중요한 텍스트잖아요. 그것을 읽으면서 전체 사상을 직역한다면, 우리가 나무와 돌도 부처로 알고 섬기고 절하면서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을 부처로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이지 않는 신에게 소리 높여 기도하고 절하고 떨면서, 어떻게 절대자 신의 형상 아들인 사람을 참신으로 아들로 알지 못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개인의 체득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함이 마땅하다, 사상이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그런 말은 정말 누구나 듣고 행해야 하는 행심반야바라밀다라고 생각해요. 불교 용어를 써서 죄송합니다. 저는 현재 종교가 없어요. 종교, ‘종’자가 원래 마루 종자로, 용마루 가장 꼭대기가 용마루잖아요. 가장 높은 의식의 학문이라는 뜻인데, 종교가 스님처럼 온유하고 본래 마음이 느껴지는 게 팔복하고 팔정도거든요. 이런 분들이 세상에 많아야 되는데, 너무 탐심이 이글거리는 사람이 많고 명예를 좋아하고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어떨 때는 종교의 옷을 입고 성직자의 옷을 입고도 그 삶을 보면 너무 아파요. 그래서 스님 같은 분이 그리고 불교방송이 잘 활성화 되어서 세상에 널리 이롭게 된다면 나도 그런 판(세상)에서 살고 싶고, 내 삶이 상대의 영역을 밟고 상대를 파괴하면서 ‘부자가 되겠다.’ ‘성공을 하겠다.’, 이것은 자신을 스스로 헤치는 것이죠. 그런 각도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Q 자 이제 정리를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시고 성천옥션이 앞으로 어떻게 가실건지 말씀해주시죠.

모든 의식과 형상을 이루는 중심의 영역을 노자는 진선미애라고 했어요.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운 삶. 욕구나 탐심을 부리면 결국 자기가 무너져요. 저는 성천옥션이 좀 희생하고 수고하더라도 모두가 순환되는 원리로 하려고 합니다.

Q 하나 더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성천문화원의 가족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있고, 몇 명이나 계시는지요.

우리는 50명 정도 되고요, 모두 지난날 종교에 있었던 분들이에요. 제가 종교를 하심하면서 ‘종교를 더 믿고 싶은 사람은 다른 종교나 교회로 가시라. 나는 종교를 믿지 않고 정말로 내 양심의 자유로 살겠다.’고 했습니다. 퇴직금도 많았지만 ‘받지 않겠다. 그 대신에 문화 활동을 하게 해 달라.’라고 했습니다.

그때 끝까지 가지 않고 저와 함께 하겠다는 분들이 50명입니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어요. 그러면 나에게 예를 표하지 말고, 내 이름이 오도석이니까 ‘도석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 형(입 口, 사람 人)이라 불러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나이가 어려도 저에게는 말을 놓아요. 이름을 부르고 ‘도석형’ 이렇게 불러요. 사람의 의식이 오랜 세월 上下로 신을 모시고 이랬는데, 이제는 수평으로 서로를 동등하게 생각하고, 종교도 우월종교 이러지 말고 친구처럼 지낼 수는 없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피를 나눈 나를 낳은 부모 형제 이런 걸 의미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가족은 빙산의 일각, 이각이라고 생각할게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은 나 외의 모든 의식을 나의 부모로 친구로 형제로 삼는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에제르 게네그또’라는 말이 있어요. 기독교 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그 뜻이 ‘돕는 배필’, ‘부부’라고 합니다. 자식 낳고 가족을 이루는 것을 부부라고 하지만, ‘하늘과 땅’ ‘너와 나’ 종교 간의 관계가 서로 돕는 배필이 될 때에도 신랑신부 부부입니다. 기독교가 불교공부를 좀 하고 불교는 기독교 공부를 해서 서로 대적하는 관계가 아니라 돕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세상이 화평케 되겠습니까.

제가 기독교로는 영성학 박사니까 성경도 많이 읽고 체득도 많은데, 불교 쪽으로는 약해서 스님들한테 ‘구경이 뭡니까’ ‘열반이 뭡니까’ ‘고집멸도가 뭡니까’ 많이 물었습니다. 고통이 오는 이유가 집착 때문이구나. 이 집착을 바로 멸하면 하심하면 자유로워지는구나. 자기를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텍스트를 의지해서 좋은 뗏목으로 삼는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목적을 향해 가는데, 가다가 강이 나오면 뗏목이 있어야 하잖아요. 뗏목을 타는 목적이 맞은편에 가면 내려야 되는데, 맞은편에 갔는데도 사람들이 안 내린데요. 왜냐하면 강을 건네준 뗏목이 너무 고마워서 뗏목에서 생을 마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뗏목에서 내렸는데 뗏목이 너무 고마워서 어깨에 짊어지고 간다는 거예요. 결국 목적까지 못가는 거지요.

그래서 바르게 하려면 그때그때 마다 결단해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깨달음이 약해 그런지 위험에서 건네준 뗏목에서 생을 마치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삶을 존중하지만 결국 생명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결단을 잘하고 행심반야바라밀다를 좀 잘해야죠.

종교에 있으면 텍스트를 안 믿으면 안돼요. 그러면 이단이라고 하고 그래요. 텍스트를 믿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을 못 믿겠더라고요. 그래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고요. 저의 깨달음은, 내가 정말 깨달은 사람이고 바른 인간이라면 모두와 대화를 해야 하고 모두를 같이 생각해야 하고 나 외의 모든 종교와 의식을 나와 같거나 나보다 낫다고 생각해야 해요.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면 다 무너지잖아요. 저는 그래서 삶을 각설이(覺說理)로 살아야겠다. 깨달을 覺, 말씀 說, 마을 理.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몸담았던 텍스트 종교를 내려놓고 성직을 내려놓으면서 나의 깨달음 각(覺)이 많은 사람들을 벽이 없이 찾아가서 그들의 의식을 구도해내서, 자기가 자기를 찾도록 참 사람이 되도록 존재를 찾도록 역할을 하는 일꾼이 되려고 합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