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대흥의 실존인물인 이성만, 이순 형제의 우애를 다룬 "의좋은형제" 이야기는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인 세종때에 이곳에서 호장을 지낸 이성만과 이순 형제가 나눈 형제애가 귀감이 된다하여 연산조 3년에 우애비를 건립했던 사실이 단순히 우회로만 전해져 내려오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50여년간 청소년들의 신교육자료로 활용되었다.

마을에 형제간에 우애가 매우 좋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 형제가 살았는데 동생이 후에 결혼을 하여 따로 살고 농사도 따로 짓게 되었다.

어느덧 가을이 되어 각자 벼를 추수한 형제는 형은 아우가 새로 살림을 꾸려서 나갔으니 더 많은 벼가 필요 할 것이 라고 생각했고 동생은 형이 조상의 제사를 모시니 벼라도 더 가져 다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형에게 볏섬을 준다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동생은 밤에 형 몰래 벼 한 섬을 형의 집에 가져 다 두고 형 역시 동생이 볏섬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밤 아우네 집에 벼 한 섬을 두고 온다.

분명 볏섬을 가져다 두었는데도 자신의 벼가 줄어들지 않아 이상 해하던 형제는 매일 밤 서로의 집으로 볏섬을 가져다 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 달 밝은 밤에 형제는 서로가 매일 다니던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볏섬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 를 알게 되어 서로 고마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던 친숙한 이야기 ‘의좋은 형제’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으며, 연산군 3년(1497)에 이성만 형제의 갸륵한 행실에 왕이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는 효제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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