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조 박사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그녀와의 사랑이 켜켜이 묻어있다. 그때 지리산 계곡의 우리 집에선 물방앗간에서 돌리는 수차에 횟대를 연결해 발전기를 돌리고 대나무와 소나무로 엉성하게 전주를 연결해 5촉 등으로 전깃불을 밝혔다. 등잔불과 호롱불로 형설의 공(?)을 닦던 나는, 제삿날에나 켜는 촛불 5개의 밝기라는 ‘5촉등’에 신세계로 이동했다. 그래서인지 전기에 관심이 많았다. 대못에 에나멜선을 감아 건전지로 연결하면 못은 전자석이 되어 쇠붙이를 주렁주렁 끌어당겼다. 도랑물을 막아 수차를 돌리고 엉성하지만 자석에 코일을 감아 발전을 하려고 엄청 시도를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헌 건전지를 뜯어 탄소막대와 구멍이 숭숭 난 아연판 사이에 염화암모늄을 걸쭉하게 반죽해 다시 감아 싸고는 미미하나마 전기를 뽑아보았다. 꼬마전구가 어둠속에서 불그레하게 발열을 하는 그 희열, 그런 기분에 과학자들이 날밤을 새울 것이다.

전기 없이 산다는 것은 빅뱅이라도 나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후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간단히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영원히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전기를 만드는 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축전이다. 농사짓고 거두어 들여서 상하지 않게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하려면 말리거나 얼리거나 염장(鹽藏)을 해야 한다. 기술을 들이면 방부처리나 진공포장 등이 가능하겠지만 전기를 저장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배터리(축전지)였다.

전기버스의 모터를 돌리는 전기는 농짝만큼이나 큰 배터리팩에서 나온다. 커야 많은 축전을 하기 때문이다. 50kwh급 2팩을 연결해 630 볼트를 낸다. 일반 자동차에는 발전기와 배터리가 있어서 배터리로 시동을 걸면 발전기로 계속 쓰는 전기를 만들고 또 저장한다. 이 배터리의 전압은 승용차용 12볼트, 트럭용 24볼트 정도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의 전자제어장치 등에 쓰이는 커패시터(축전기; capacitor)란 것이 놀라운 물건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콘덴서(condenser)라고도 하는데 광학분야에서 집광기(빛을 모으는 기기)나 기체역학에서 응축기(기체를 액체로 변화시키는 기구)를 콘덴서라고 하니 헷갈릴 수가 있다.

이 커패시터는 시루떡을 쌓듯이, 고층 아파트를 짓듯이, 쌓아올린(적층)것을 그 소재인 세라믹(고령토)과 함께 적층(Multi Layer) 세라믹(Ceramic) 커패시터(Capacitor)라고 부른다. 하는 일은 전기를 저장했다가 주로, 반도체가 필요로 하는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전압이 요동치지 못하게 막고 집적회로를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다. 그러면 전자부품은 제 기능을 하고 수명도 길어질 것이다.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이 MLCC가 1,000여개 들어 있는데 비해 전기자동차엔 열배가 넘는 13,000개, 앞으로 나올 IOT 자율주행차엔 15,000개가 들어갈 것이라 한다. 반도체 집적회로 옆에 붙어서 필요한 전력을 축전해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또 축전해 두는 것이라 골퍼와 캐디 같은 역할이다. 뭐든지 다 지원할 테니 공부만(?) 잘 하라는 엄마 같다면 너무 끌어다 붙인 건가?

최근에 삼성전자가 사촌인 삼성전기의 사업장을 늘여 MLCC를 많이 만들겠다 해서 주목을 받았다. 이 분야에 앞선 일본의 무라타 제작소(村田製作所)가 세계시장을 40% 넘게 차지하고 있단다. 해방전에 도쿄에서 염색공장 자리를 빌려 애자(碍子, insulator)를 만들었고 그 이후 기술의 흐름을 짚어 콘덴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가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볼 따름이다. 미중갈등으로 미국이 일부 중국 업체들을 견제하자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정보기술의 흐름을 보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반도체와 커패시터 형제인 것 같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중후장대한 것에서 경박단소한 것으로 가야 한다던 때가 있었다.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고 한 때가 있었다. 공학보다는 인문학을 중시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상대적이고 단편적인 표현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시대다.

아날로그로 된 인간이 디지털을 이용해서 사는 시대다. 인간은 지식과 기술로 돈은 벌지만 돈을 먹을 수는 없고 그 돈으로 빵과 우유를 사고 꼭꼭 씹어서 소화를 시켜야 사는 것이다. 많은 돈으로 대단한 의료기술을 살 수는 있지만 건강은 왕성한 대사로서만 가능하다. 쾌식, 쾌면, 쾌변이 그것인데 손발과 몸뚱이를 땀나게 움직여야만 얻을 수 있다.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려면 줘 버리고 비울수록 가벼워진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쌀 10kg 가격이 3만 원 정도인데 산업의 쌀이라 부르는 MLCC 10kg 가격은 얼마나 될까? 알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겠지만 10만 배라 해도 30억이다. 그런데 MLCC를 먹고 살 수는 없으니 때로는 한 줌의 쌀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입추가 지났지만 맹위를 떨치는 이상기후 탓에 나도 이상해 진건가......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영학박사

경남대학교 기획처장, 경영대학원장, 대학원장, 명예교수(현)

저술가, 번역가, 칼럼니스트

kjcho@u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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