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을 탈피하여 시원한 숲속으로 산책하는 무주 적상산사고 문화체험을 소개한다.

한국 백경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였으며,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적상(赤裳)이라 이름 붙여졌다.

사고(史庫)란 고려 말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실록 등을 비롯하여 나라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내사고인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지역과 전주지역, 성주지역 등 네 곳의 사고가 운영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사고가 소실되었다.

이에 1603년(선조 36) ~ 1606년(선조 39)에 전주 사고본을 바탕으로 정본 3부와 초본인 교정부 1부 등 5부를 만들어 내사고인 춘추관을 비롯한 강화지역의 마니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 등 다섯 곳에 사고를 설치해 보관하였다.

묘향산사고는 당시 북방에 있던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었고, 이에 1610년(광해군 2)에 조정에서 관리를 보내 적상산의 지형을 살피고 산성으로 수축하였으며, 1614년(광해군 6) 산성 내에 실록천을 건립하였다.

이 후 묘향산에 있던 실록을 적상산으로 옮겼고,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을 건립하고 「선원계보기략」을 봉안함으로써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봉안된 서책의 수는 모두 5,514책이었다고 한다. 적상산사고는 1872년(고종 9)과 1902년(고종 39)에 개수改修되어 명맥을 유지하다가, 1910년(순종 4) 국권 피탈이후 봉안되었던 실록이 장서각으로 옮겨지면서 폐지되었다. 1992년에 적상산 사고지 일대가 적상댐 건설로 인해 수몰됨에 따라 그 터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1996년부터 1998년에 걸쳐 건물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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