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端午)는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 순천 선암사를 향해 길을 튼다. 짙푸른 녹음이 우거지고 들판에는 망초 꽃이 하얗게 피었다. 한국전쟁이 벌어진 6월 25일 그날이 단오와 우연하게도 맞물린다. 그래서 순천 선암사로 향하는 지리산 자락, 70년 전, 이름 모를 어린 전사자들의 아픔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순천 선암사, 태고총림이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 아도화상이 비로암으로 처음 개창, 875년(헌강왕 1) 도선 국사가 선암사로 명명했다. 선암사(사적 제506호‧명승 제65호)는 몇 번의 화재와 수차례의 중건 및 중창에도 기존의 틀을 깨지 않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암사는 천년고찰이다. 천년의 세월 수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태고총림’의 전통의 맥을 후대에게 대물림해가고 있는 유서 깊은 대가람이다.

순천 선암사 산문을 상징하는 도깨비 장승을 올려다보며 합장하고 섰다. 그러자 하루살이 떼 우르르 몰려든다.

바로 옆으로 선암사 부도(浮屠)가 있다. 단오의 양기를 품은 비에 흠뻑 젖어 있어 푸른 이끼가 소복하게 자라고 있다.

고향을 향하고 있다는 중앙의 부도의 모습에 자꾸 시선이 멈칫댄다. 깊고 깊은 산중에 앉아 불경을 낭송하고 야생 녹차를 덖는다 해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산천을 잊지 못했던 고승의 애절한 마음이 그곳에 있다.

몇 걸음 더, 걸어올라 순천 전통야생차 체험관 솟을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선암사 뒤편 조계산 아래 야생차밭에는 수령 800년이 넘은 자생 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삼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음지에서 자라 찻잎이 연하고 운무와 습한 기후가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하여 최고의 차로 친다.

승선교(昇仙橋) 무지개 모양의 반월형 다리다. 임진왜란 이후 불탄 선암사를 중건하면서 시냇물을 건너기 위한 용도로 무지개다리를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보물 제400호 승선교는 조선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아치형 석교다. 승선교는 아랫부분에서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가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는데, 물에 비춰진 모습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의 원을 이룬다. 조선 숙종 39년(1713)에 호암대사가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승선교를 건너자, 신선이 노닐었다는 강선루(降仙樓)가 모습을 드러냈다.

승선교와 강선루에 안개가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유형문화재 제96호 일주문에 도착할 무렵, 다람쥐 한 마리 제집 마당인 양 9개의 돌계단 문틀에 날름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 하나하나 내려다본다. 오랜 세월 숱한 전쟁을 피해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올곧게 보전하고 있으니 위엄스럽기까지 하다.

선암사에는 사천왕을 모시지 않았다. 조계산 장군봉이 가람을 지키고 있어 굳이 사천왕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주문 뒤로 범종각이 자태를 드러냈다.

범종각은 원형기둥으로 세워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우진각지붕으로 겹처마 선이 우아하다.

만세루를 통과하는 길을 지난다. 육조고사(六朝古寺)는 선암사의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1824년에 대웅전과 함께 중창한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익공형의 홑처마 맞배지붕 선이 곧다.

선암사 목어는 속울음을 매일 토해내고 있느라 그 몸피마저 하얗게 변해있었다.

드디어 대웅전(보물 제1311호 )을 마주한다. 고려시대 의천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이다.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660년(현종 1)에 새로 지었다 한다. 그 후 1766년(영조 42)에 다시 화재에 의해 소실된 것을 1824년(순조 24)에 지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3간, 측면3간의 평면 구성으로 바닥에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한 분만이 고요하니 세상을 굽어보고 계신다.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소실된 부처를 더 이상 모시지 않고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석가모니불만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선암사 대웅전은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 어간문이 없는 대웅전 밖 보물 제395호 3층 석탑을 굽어보는 석가모니불의 눈빛 그윽하니 깊다.

대웅전 우측면에는 ‘비사리 구시’가 있다. 오래전 선암사에서 주석하는 승려들의 공양을 담아 두었던 목조 용기다. 그 깊이와 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대웅전 바로 우측에 지장전이 있다. 지장전은 182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24년 제6창 불사 때 중건한 것이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규모다.

선암사 홍매화 군락지는 2007년 11월 26일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등록될 만큼 입소문이 나 있다. 매화꽃은 지고 이젠 매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선암사에는 대웅전․팔상전 등 이십 여개의 건물 및 전각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선암사 원통전(圓通殿) 은 많은 역사와 설화를 담고 있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전각이며 보통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선암사의 원통전은 1660년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이 처음 지었고, 1698년 약휴대사(若休大師)가 고쳐지었다. 그 후 1824년에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이 중수했다. 또한 운악돈각(雲岳頓覺)선사의 유촉으로 1000여 원을 회사하여 1923년에 중수하였다.

사찰건축에서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어 주목 받는 건물이기도 하다.

조선 정조가 후사가 없자, 눌암 대사에게 100일 기도를 부탁하여 순조 임금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후에 순조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人(인), 天(천)’, ‘大福田(대복전)’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다. 이 현판은 현재 건물의 내부에 걸려 있다.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에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서둘러 숙소에 짐을 부려놓고, 선암사 방장 지암스님과 선암사 주지 시각스님을 뵙고 삼배의 예를 올릴 약속시간이 되어 종무소 쪽으로 나있는 샛길로 나섰다.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받아 연못과 수각을 설치해 보이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수각을 곳곳에 설치한 것은 화재를 예방하려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종무소로 가는 길목, 그 유명한 순천 선암사 측간(順天 仙巖寺 厠間)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선암사 측간의 아름다운 지붕에 반하게 된다. 2001년 6월 5일 전라남도 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되기까지 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장실이다.

선암사 방장 지암스님의 수행 처는 깊은 깨달음의 누각이다. 삼배를 올리는 동안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삶의 무게를 더 이상 두 다리가 지탱할 수 없음이 느껴진다. 나직하고 고요한 지암 스님의 위로와 염려의 법어, 코로나 19로 인해 어지럽고 위험해진 일상을 위한 기도소리처럼 들린다.

선암사 주지 시각 스님의 작은 꽃밭, 선암사의 이슬을 머금은 꽃들이 피고 지며 염불소리를 외고 있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손길이 느껴진다.

어느 새, 저녁 공양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경내에 퍼졌다.

공양간에 들어가 외부인 공양석에 자리하고 앉았다. 산나물 3가지 맑은 콩나물 국, 배추김치와 고추장, 그 맛이 깊다.

저녁 예불이 시작되기 전 사물놀이가 시작되었다. 북, 종, 운판, 목어의 타종은 깊고, 청명하며, 심금을 울렸다. 범종 28번의 타종을 마치자, 대웅전 스님들의 염불소리 도량 가득 울려 퍼진다.

여장을 풀고 땀에 젖은 몸을 닦아내고 숙소에 누워 잠시 땅울림소리를 듣는다. 곧 저녁 9시 취침종이 울렸다. 모든 도량의 불이 모두 꺼진다. 그때부터 선암사는 조계산 장군이 내려와 수문장처럼 도량을 지킨다. 모두가 편히 눈을 감고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참회하며 곤히 잠들 수 있도록 말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분자분한 소리가 귓가에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다른 방 일행들의 숨 고르는 소리, 뜨락을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조정례 소설가의 유년 시절이, 선암사 경내에서 자랐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버지가 선암사 스님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정례 소설가를 생각하다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새벽 2시, 선암사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새벽 3시 예불을 위한 준비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소소 찬 기운이 도량 가득했다.

새벽 3시가 되기 전, 도량석(道場釋)이 시작되었다. 도량을 청정히 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다.

스님은 대웅전에 불을 밝히고, 도량을 돌며 염불하며 목탁을 쳤다. 스님의 목탁 소리 슬프고도 청아했다.

곧 이어 새벽 사물놀이가 시작되었다. 북소리는 지상의 중생을 깨우는 소리며, 운판은 날아다니는 새들을 깨우는 소리,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깨우는 소리, 종은 땅속의 미물을 깨우는 소리라 했다. 새벽 타종식이 모두 끝나자, 대웅전에 모인 스님들의 예불이 시작되었다.

이러저러한 삶의 찌꺼기들이 모두 씻겨가는 느낌을 받으며 기도의식에 동참했다. 새벽 예불이 끝나고 송주(誦呪) 의식이 진행되었다.

송주(誦呪)의식은 장엄했다. 게송(偈頌)이나 다라니(陀羅尼)를 독송하는 불교의식인데 독송에 신비력을 부여하는 신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에 쌓인 걱정거리가 금세 사라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송주 의식을 마치자, 동녘 하늘이 하얗게 터오기 시작했다.

곧 발우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발우공양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하는 식사법이다. 밥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하는데, 부처의 탄생, 성도(成道), 열반의 과정을 생각하며, 보살과 부처를 생각하며, 자연과 뭇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거룩한 의식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해서 대중공양, 법공양(法供養)이라 한다.

발우공양이 끝나고 선암사 전각을 자세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등명스님의 전각소개는 자세하면서도 설화를 곁들여 재미가 있었다. 선암사는 템플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국 불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선암사에서의 하룻밤, 참으로 여러 날처럼 길었다. 하루를 일 년처럼 살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만큼 크고 알찬 느낌이 가슴 가득 들어찼던 것이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