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산(시인·소설가·사진가)

밀린 암실 작업을 하는 내내 영화 두 편을 떠올렸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와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 전, 평범한 한센병 전문의 지망생 청년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혁명가의 꿈을 품는 시기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자연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여행하면서 촬영하고 기록한 내용이 원작이다.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는 독일군 강제 수용소 ‘마우트하우센’에 수감된 스페인 포로가 사진사로 노역하면서 나치의 만행이 담긴 필름을 발견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필름을 세상에 공개한 역사물이다.

체 게바라는 혁명 전이든 혁명 중이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때든 카메라를 품에 끼고 다닌 기록사진이 많다.

쿠바의 사진가 ‘ALBERTO KORDA’의 쿠바 혁명기록 흑백사진집 『한 혁명의 일기』(Diario de una Revolucion)에도 체 게바라는 거의 카메라를 든 모습으로 담겨있다. 혁명가이자 자연인으로서 취미 이상의 사진적 가치를 인식한 모습이라 하겠다.

두 영화가 당대의 사진을 바탕으로 실제 상황을 재현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의 현실감과 신뢰성을 높여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기록사진이 갖는 역사적 진실성을 우리에게 환기하는 의의를 지녔다고 여겨진다.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바꾼다.’

사진의 본질이 단순한 기록성과 사실성의 영역을 뛰어넘는 힘을 지녔다는 의미로 인구에 회자 되는 말이다. 사진이 세상에 나온 뒤 그것은 종종 증명되고 있다.

역사를 기록하고, 변혁에 힘을 더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을 우리는 사진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다큐 사진가나 저널리스트는 언제든 세상을 바꿀 한 장의 사진, 또는 인류에게 감동을 선사할 그 ‘셔터 타임’을 기다린다. 물론 다큐 작업을 하는 나도 그렇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말대로, 중무장한 듯 무겁게 살아가면서도 일생에 단 한 번 맞을 셔터 타임을 기다리는 일이 즐거운 이유다.

암실에 앉아 서초동 촛불집회 필름을 현상하고 들여다보자니 썩 만족한 상은 못 되지만 기록사진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개혁의 뜻을 같이한 아름다운 동행.

한순간 암실이 환해지면서 열기가 느껴진다.

동대문 쪽방촌과 여인숙, 중계본동 백사마을 필름 작업도 많이 밀렸다. 궁금하다.

이강산(시인·소설가·사진가)

「휴먼 다큐」 아날로그 흑백사진개인전 5회 개최휴먼 다큐 흑백사진집
『집-지상의 방 한 칸』장편소설 『나비의 방』 외.
흑백명상사진시집 『섬, 육지의』 외
현재 중앙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순수사진전공) 재학.
한국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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