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절기를 며칠 앞두고, 이순 시인의 요람 ‘문화의 힘’을 향해 내달렸다.

이순 시인의 요람 ‘문화의 힘’ 근처에 이르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근처라고 안내를 했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초행이고 길눈이 어두워 동네 몇 바퀴를 돌아야만 겨우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실수를 범할까 싶어 한 시간 먼저 출발했던 것이다. 좋은 인연의 징조였을까. 길을 헤매지 않고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 30분 전이었다.

북부교가 보이는 느티나무 아래 주차를 하고 사이드를 채웠다. 그리고 이순 시인의 『꽃사돈』 그 시집에 나오는 풍광들을 하나 둘 눈 속에 담았다.

대동천이 흐르고, 북부교 다리 밑 적덕 積德이 고인다는 움막도 보이고, 윤슬 반짝이면 잉어들 산란하기 위해 길 차림을 한다는 얕은 수심도 보였다. 그리고 장미꽃 진 빈 울타리 사이로 밤 편지를 남기고 깊은 잠에 빠진 대추나무, 감나무, 남천, 단풍나무, 그리고 매화나무가 보였다.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들 고양이 세 마리 제집인 양 어슬렁댔다. 시집 속에 나오는 ‘문화의 힘’ 수문장이라는 그 고양이들이 분명했다.

며칠 전, 이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꽃사돈』을 덥석 받았다. 시인의 시집이 장엄한 순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책상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는 무심하게 책장조차 넘기지 않고 홀로 두었다. 시집의 제목처럼 ‘꽃사돈’을 맺자고 손을 내밀었는데도 그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던 것이다.
 

내 집 채송화 그 집 뜰에

그 집 골담초를 내 뜰에 옮겨놓고

딸인 듯 아들인 듯 바라보며

서로를 생각한다

우리 채송화 잘 잇지?

응 우리 골담초는?

- ‘꽃사돈’ 전문-

이순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대전에서 자라 한밭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현재 도서출판 ‘문화의 힘’을 운영하고 있다.2014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2008년 <문화시대>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속았다』(시학, 2016년)이 있다.현재 대전작가회의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북부교 다리 밑은 노숙자 차지

밤마다 생수 한 병씩 갖다 주는 사람 있다

노숙자가 부처다

누군가의 적덕積德을 위해

스스로 다리 밑에 가부좌 틀었다

-‘적덕’ 전문-

이규식 문학평론가(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는 이순 시인의 『꽃사돈』을 일컬어 ‘교감과 관조, 일상의 비의 秘義’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시집 안에는 이순 시인의 심미안과 그 반경 안에 포착된 대상을 연역해 내는 역량들이 튼실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이순 시인이 운영하고 있는 도서 출판 ‘문화의 힘’ 도어가 풀어지고 시인과 마주하고 앉았다. 해사한 시인의 얼굴에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피었다는 마당가의 꽃들이 어른거린다.

‘문화의 힘’ 요람의 모든 기운이 모인다는 혈 자리에 맷돌 하나 박혀있다. 가끔 그곳에 앉아 동네 고양이들도 만나고,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들과도 교류를 한다는데, 햇볕 쪼이기에 딱 좋은 그곳에, 시어들이 꽃잎처럼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이 어룽졌다. 그렇게 이순 시인의 시집 『꽃사돈』이 사돈 맺기를 위한 잠행潛行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우리 집 화단에도 딸인 듯 아들인 듯 바라보아야하는 화초들이 밤 편지를 쓰고 잠들어있다. 봄이 되면 이순 시인의 꽃 마당에 필 꽃들과 꼭 사돈을 맺어야겠다는 언약을 하며 따뜻한 차 한 잔 나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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