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낼 때마다 나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유진택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붉은 덩굴장미가 피던 6월 ‘책 나눔 일일장터’ 돗자리 마당에서였다.

그 날 시인은 종이를 대주느라 밤낮없이 고생했을 나무에게 졸지에 죄인이 되었다며 돗자리 이웃이었던 나에게 『염소와 꽃잎』시집을 정성스럽게 건넸다.

염소와 꽃잎

-유진택-

둑에 매여 있는

염소의 콧등에 꽃잎이 내려앉는다

허공 어디쯤에서 날아왔는지

꽃잎이 거뭇거뭇 시들었다

붉은 꽃이 거뭇하게 변할 때까지

세상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영영 시들 것 같지 않는 꽃잎에

파르르 떠는 염소의 눈꺼풀

염소도 외눈으로

시든 꽃잎을 슬쩍 보았을 것이다

유진택 시인이 ‘책 나눔 일일장터’의 돗자리 이웃이라는 인연도 컸지만, 같은 고향 영동 출신이라는 게 더 큰 인연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인이 그려내는 고향 풍경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유진택 시인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안화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시 속의 고향 냄새와 빛깔까지도 익숙했다. 시인의 고향 안화리 사투리가 슬쩍 제 목소리를 내며 반기기까지 했다.

시인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30년 가까이 대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제 대전시민이 된지도 어언 30년이 흘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염소와 꽃잎』시집을 통해 ‘나는 영동군 황간면 안화리 백힌 돌이다. 나는 절대 굴러들어온 돌이 아니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라며 힘주어 말하고 있다.

유진택 시인은 1996년『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시「달의 투신」 외 3편을 발표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텅 빈 겨울 숲으로 갔다』,『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날다람쥐가 찾는 달빛』,『환한 꽃의 상처』,『달콤한 세월』,『붉은 밥』,『염소와 꽃잎』이 있다.

2013년, 2016년, 2019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2018년 대전문학관 시 확산 시민운동 작가로 선정되어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 시화가 걸리기도 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와 좌도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전작가회의 이사와 무천문학 회장을 맡고 있다.

12월 마지막 남은 달력이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댄다.

왕성한 시 창작을 하고 있는 유진택 시인은 ‘좌도시’ 서른네 번째 동인지 『백양나무 숲에 갇힌 오후 여섯시』와 ‘무천문학 2019’ 『바람의 굽은 등뼈』를 펴내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좌도시’는 1980년 2월에 ‘시림문학동인회’로 창립되어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시문학 동인회다. ‘좌도시’ 서른네 번째 시집에는 김종윤, 유진택, 안용산, 안지순, 이은정, 양해남, 길일기, 정성균 회원의 시와 산문을 발표했으며, '무천문학 2019'에는 유진택, 장인수, 노수승, 이향숙, 선홍기, 류환, 이기화, 권기택 회원의 시를 발표했다.

틀니

-유진택-

노모는 틀니로 세상을 버텼다

돌이라도 씹을 것 같은 젊은 날의 이빨은 몽땅 빠졌다

그래도 생 이빨만한 게 없다고

늘 뭔가를 우물거렸다

암소처럼 되새김질하는 엄마가 신기했지만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잇몸으로 우물거리는 엄마의 얼굴은 쓸쓸했다

그러다 잇몸마저 망친다고 틀니를 해주었지만

그것도 답답한지 틀니를 물그릇 속에 담가 두었다

물그릇 속의 틀니는 귀신처럼 허허 웃고 있었다.

소리 없는 웃음에 놀라 손을 대기도 싫었지만

잇몸으로 견뎠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엄마, 엄마 붙들고 통곡해도 시원치 않다

틀니는 물그릇 속에서 조개껍질처럼 입을 벌리고 있지만

틀니가 없던 날을 생각해보라

잇몸으로 어떻게 거친 밥을 먹고 살 수 있겠는지를

입 딱 벌리고 자고 있는 엄마의 입 속이

동굴처럼 허전하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