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발굴 포상 신청한 독립운동가 김승탁(金承鐸·1900∼1943‧하동군 적량면) 선생이 26일 건국포장을 전수받았다. 김승탁 선생은 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인 중 한명인 김응탁의 동생이다.

이번 정부포상은 김덕석 경남서부보훈지청장이 하동군청을 찾아 군수 집무실에서 윤상기 군수와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정기민 광복회 경남도지부 서부연합지회장, 유족이 함께한 가운데 선생의 딸 김부자(79·하동읍 부용동)씨에게 전수했다.

서훈과 관련, 정재상 소장은 “지난해 3월부터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군내지역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추진하면서 국가기록원과 하동군 읍·면사무소 문서고에서 발굴한 독립운동가”라고 밝혔다.

건국포장을 받은 김승탁(적량면 서리) 선생은 1920년 하동에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주도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소위 제령7호 위반으로 1920년 12월 2일 진주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1923년 2월 진주노동공제회 적량지회 발기인, 1924년 하동기근구제회 모집부원으로 활동하고, 1925년 4월 서울에서 조선기자대회에 사상운동 하동지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같은 해 11월 하동노농연합회(河東勞農聯合會) 및 하동청년연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26년 1월 하동기자단 상무위원, 동년 3월 하동노농회(河東勞農會) 집행위원 등으로 항일운동을 이어가다 6월 순종 장례식 전 또다시 검거돼 투옥, 고초를 겪었다. 이후 선생은 둘째형 김응탁과 함께 중국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특히 김승탁 선생은 만주에서 조선인 학교를 설립,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 해방운동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동 중 1943년 7월 24일 일본군에 의해 피살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43세였다.

윤상기 군수는 “김승탁 선생의 위국헌신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며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선생의 뜻이 계승될 수 있도록 독립운동가 선양사업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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