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조 (曺基祚 Kijo Cho)

이따금씩 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그분은 나를 알지 못한다. 수백 명의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일면식도 없는 나를 어찌 알겠는가? 메일이 오니 그냥 열어보았는데 지금은 기다려진다. 메일이 올 때가 되었는데....... 밤잠을 줄여 졸리는 눈을 비비고 메일을 보낸다고 하던 올빼미 같은 그를 올빼미인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최근에 그는 새벽에 일어나 학교 운동장을 50 바퀴 달리기로 했고 실천하고 있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했다는 것. 달리다 걷다 해도 50 바퀴는 채운단다. 중단하면 ‘허언쟁이’가 되도록 아예 공표를 하고 나섰다. 땀이 나고 아침 밥맛도 있단다. 큰 결심에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그걸 알고 싶은 것이 아니고 잘 될까?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이다.

어제 그가 보낸 메일에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읽었다.

미국에서의 이야기다. 당번인 택시기사가 어느 집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도착해 빵빵거려도 기척이 없자 와버릴까 하다 문 앞에 가서 기다렸다는 것. 한참 후에 나타난 꼬부랑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긴다며 시내 여기저기를 둘러 병원을 가자기에, 느낌이 있어 미터기를 끄고 할머니의 시중을 들었다. 요양병원에서는 다시 나오기 힘든, 마지막 여행이 될 추억이 될 듯해 친절하게 모셨단다. 할머니가 그날 그 기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안도하면서도 내 퉁명함과 싹둑 자르는 거절이 누군가에게 비수되어 가슴을 찌른 일들은 없었는지 더듬어 본다.

또 다른 사연이다. 그를 잘 따르는 친구의 여동생이 있었단다. 사랑은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친구의 아버님으로부터 내 딸과 결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며칠이 지나도록 생각해 보니 변변치 못한 자신의 처지에 그만한 사람도 없겠다 싶어 저녁식사가 끝 날 시간쯤 전화를 걸었단다. 찾아뵐 시간을 물어보려고. 그리고 따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고...... 전화기에 친구 목소리가 들려 늘 하듯이 “야 형님이다. 이놈아! 밥 먹었냐?” 했더니 험악한 대꾸에 까무러칠 뻔 했다는 것. 분명 친구는 아니었고 친구의 아버님도 아닌 그 누구는? 그리고는 전화를 더 하지 못하고 그 결혼은 끝났다는 것. 하필이면 제삿날에 친구의 삼촌이 와서 전화를 받아 일어난 일이었다.

내게도 ‘웃픈’ 이야기가 있다.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방학 어느 날, 교수님께서 안 바쁘면 집으로 오라고 했다. 책을 내는데 원고를 좀 정리해 달라는 것. 내게는 영광이었다. 냉큼 교수님댁으로 달려가 한 일주일은 몰두했던 것 같다. 손으로 700자 원고지를 적고 또 고쳐 적는 일이었다. 700자는 책 한 쪽 분량이다. 공중전화밖에 없던 시절이다. 한 주 동안 일을 마치고 후련함에,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여자 친구를 먼저 찾았다. 반겨줄 줄 알았던 그녀는 토라졌는지 시무룩했다. 만나서 무용담처럼 선생님의 책 원고를 정서한 이야기를 하며, 보고 싶었지만 남의 집 전화기를 쓸 수가 없었다며 미안타 했는데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갑자기 연락을 뚝 끊어서 집요하게 구애하는 사람과 날을 잡았노라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그게 내 인생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이렇듯 우연한 일이 중요한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더러 있다. 그런데 나는 결정 장애가 있는 것 같다. 미루기를 잘 한다. 그러다가 좌석을 놓치거나 손해를 보기도 하고. 하루 이틀 뒤에 생일 축하를 뒷북치고, 부조금을 뒤늦게 죄송타며 보내고. 싫단 말을 못해 동의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오늘 아침을 먹고 잎사귀들이 더 떨어지기 전에 그 집 앞을 거닐어 볼까 하다가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에 잡혀 주저앉았다. 이놈의 줄은 어찌 이리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느린데다 길게도 늘이다 사라지곤 없다. 바이올린이 마누라 바가지처럼 이라면 베이스는 어머님의 자장가처럼이라해도.. 이리도 잘 어울릴까? E 마이너와 G 마이너가 더 애잔하다. 간밤에는 무성한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더니만......
 

조기조(曺基祚 Kijo Cho)

경영학박사

경남대학교 기획처장, 경영대학원장, 대학원장, 명예교수(현)

저술가, 번역가, 칼럼니스트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2판, 공저자)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이사장(현)

kjcho@uok.ac.kr

https://www.facebook.com/kieejo.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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