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의 가을
[탐방]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의 가을
  • 이경
  • 승인 2019.10.11 0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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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수암골에 가을 햇살이 가득 내려앉는다.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돌담 위의 집, 그 위에 또 다시 집들이 다랭이 논처럼 층층이 지어져있다. 그래서 볕이 골고루 든다. 수암골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낡은 건물들을 허물어 멋진 카페를 짓거나 빌라 촌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전망 좋은 터에는 이미 별장이 들어서고 야금야금 곁을 파고들어 이젠 골목 한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불편함을 무시하고 그대로 보전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들이 오종종 모여 있는 수암골에 산책 나온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한국전쟁 이후,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았던 피란민들이 청주로 대거 이동하면서 수암골 전재미 마을이 생겨났던 것이다. 어디 하나 사연 없는 곳 없고, 어느 한 집 안 아픈 사람 없었다. 모두가 아프고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돌 축대를 쌓고, 변소를 짓고, 돌계단을 만들어 그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아이도 키우고 부모를 봉양했다.

개발사업에서 잠시 소외 되었던 수암골 그곳에 가을이 영글어가고 있다. 많은 원주민들이 떠나고 없지만 수암골이 어떤 마을인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있어 퍽 다행이다.

우암산 기슭, 양지마른 수암골에는 골목골목 이야기들을 예술가들이 발견하고, 드라마와 영화로 퍼 날랐다. 그 덕분에 수암골은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났고, 시끄러워 못살겠다며 원주민들이 이삿짐을 싸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집 처마를 서로 등 지고 따뜻한 가을 햇살을 포근히 맞고 있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마다 다양한 주제의 벽화를 그리는 화가들도 보인다. 또 다른 이야기가 수암골에서 피고 있다.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나올 것 같은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다.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나도 저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뜩한 그리움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목수였던 아버지와 늘 밭일 나가던 어머니, 그리고 코흘리개 어린 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던히도 어렵고 힘든 시절, 변소 가는 일도, 추운 겨울에 목욕하는 일도, 방에 군불을 지피는 일도 모두가 번거롭고 불편했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도 없고, 전축도 없었다. 하지만 뒷동산에 올라 둥근 달을 쳐다보았던 유년의 가을은 너무도 밝고 아름다웠다.

수암골의 가을 햇살이 가득 머물러 있는 골목길을 따라 가장 높이 지어진 집까지 걸어 오른다. 그곳에 멸치국물을 우린 달달한 냄새가 골목 가득 퍼지고 있다. 막걸리 잔 술을 판다는 곳에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주인장이 써 놓은 글씨, ‘잔술 팝니다.’ 정말 잔술 한 잔 먹고 싶단 생각 간절해졌다. 칼국수 그리고 도토리 묵무침을 파는 점방이었다. 세 평짜리 방에는 이미 손님이 가득했다. 신발 벗어 놓을 공간이 없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멸치국물 냄새가 뇌리를 파고들어 갑자기 허기까지 몰려왔다. 길손이 되돌아 나와도 그 누구도 왜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 마음대로 들고 나가는 점방인 모양이다.

수암골 골목을 따라 걷는 시간은 나의 모습을 반추해보는 시간이었다. 잊고 있었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그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도 여자이고 아름답고 꿈 많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노래도 잘하고 밝고 명랑하고 총명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 잊고 있었다. 절대로 여자이면 안 되는, 두 아이의 어미이고, 두 아이를 위해, 두 아이를 위한, 모든 경제활동과 계획을 짜느라 온통 머릿속이 굳어버렸다. 그런데도 그 두 아이는 자기 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쉬는 날에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항상 내가 먼저 눈치를 보며 전화를 건다. 객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것조차 안쓰럽고 불쌍하고 더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주눅들어하고 궁색해 한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나는 항상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수암골에는 오래전 나의 집이 있었다. 지금의 나, 너무도 부유하고 너무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있고, 전화도 있고, 컴퓨터와 차도 있다. 다만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었다.

‘나라는 존재와 그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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