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진선 민화 작가
[인터뷰] 박진선 민화 작가
  • 이경
  • 승인 2019.07.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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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선 화가를 만나던 날, 능소화가 담장마다 환하게 피어 지고 있는 여름날의 오후였다.

소여 박진선 민화 교실은 한남대학교 기슭, 작은 빌딩에서 날마다 붉은 목단과 무명 빛 목련을 피워내고, 진흙 속 연대를 밀어 올려 붉고 흰 꽃을 피워냈다.

‘소여 민화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벽에 걸린 ‘책가도’가 지치고 힘들었던 지난 삶을 보듬어 안기라도 하는 듯 따뜻한 빛으로 반겼다. 아니 장막 속의 호랑이가 포효를 하며 성큼 다가섰다.

박진선 화가는 1983년 한남대 미술교육과를 졸업 한 후, 늘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매달렸다. ‘그림이야말로 내 삶의 전부다’라고 말하는 화가의 뜻처럼 작업실 내부는 세월의 흔적과 고뇌가 켜켜이 쌓인 작품들이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1, 민화를 그리게 된 동기?

유년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친정어머니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공부만 한다면 끝까지 밀어주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부모님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게 당시로써는 여러 여건이 좋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하게 되었고, 그림에 대한 예술 혼을 나름 불태웠다. 3학년 때 충남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금상을 수상할 만큼이었으니 대학 생활 내내 그림에 몰두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둥지를 틀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의 예술은 점점 생활 속에 묻혀갔다. 여느 주부처럼 남편 뒷바라지와 두 아이를 키우고, 집안 대소사 챙기고...나름 지치고 힘든 세월을 무심히도 흘려보냈다.

그러다 2009년도 민화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물감 만지는 일만 한다면 더 바랄게 없었다. 두 아이가 성장해 둥지를 떠나자,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러자 무심했던 남편도 민화 작업실을 내주었다. 그 깊은 마음에 보답하고자 나는 날마다 그림에 고운 꽃씨를 뿌리고 있다.

2,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유년 시절?

대전 동면에서 스무 살까지 살았다. 대청댐이 생기면서 내 고향의 흔적들은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머니의 된장과 고추장이 익어가던 장독대와 우물 그리고 예쁜 꽃들이 피어나던 꽃발과 텃밭 너무도 탐나던 순이네 감나무도 모두모두 물속으로 사라졌다.

은빛 백사장이 뽀얗게 드러나면 아이들이 물장구를 쳤던 강가는 푸른 댐으로 변해버렸다. 유년 속의 생활은 한 폭의 그림들이었다. 동면에서 살았을 때에는 나름 살림이 부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가 벼농사 밭농사도 많이 짓고 가축도 키우고 해서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다. 그런데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부모님은 추부로 터전을 옮기고, 우리 형제들은 공부를 해야 하기에 대전으로 이사했다. 그런 이후, 늘 가슴이 아팠다. 나는 동면에서의 모든 추억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미술작업을 시도했다. 유년의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실향의 아픔이 줄곧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3, 그동안 그린 민화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10여년 민화를 그렸다. 언젠가 창덕궁 대조전 ‘봉황도’를 보게 되었는데, 몇 년 동안은 봉황도에 빠져 지냈다. 요즘은 ‘호피 장막도’ 원화전을 본 이후, 8폭 ‘호피 장막도’를 그리고 있다. 민화 화가마다 소재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모시나 비단 그리고 광목과 목재에도 민화를 그린다.

민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민화는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다. 옷이나 가구에도 모두 응용되고 있어 알게 모르게 친숙하고 대중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원과 동시에 고 난이도 작업과 창작의 의미가 더해지고 있으니 나름 자부심이 느껴지는 장르이기도 하다.

4, 작품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현재(사)한국전통민화협회 이사으로 활동 중이며, 야촌 윤인수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2015년 2월부터 ‘소여(素如) 민화교실’을 열어 강좌를 개설하고도 있다. 민화를 좀 더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민화교실을 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민화동아리 ‘민화愛스미다’를 꾸려 마음이 맞는 동인들과 민화를 그리고 있다. 2019년부터는 민화를 알리고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송촌동 행정복지센터’에 출강을 하고 있다.

5, 앞으로의 계획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토대로 폭 넓은 강의와 개인전을 구상하고 있으며, 지역 민화 발전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변화와 통일, 균형이 민화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민화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의 생활 풍습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은 탓에 복원의 의미가 크다고 하지만, 현대 민화에 발 맞춰 변화의 새바람과 통일 그리고 적절히 균형이 잡힌 민화 그리기에 충실 할 것이다.

거기에 더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내 고향 ‘동면’ 언저리에 작은 작업실 겸, 쉼터를 마련해 ‘소여 민화 공간’이란 명패를 달아 두고 싶다. 그 꿈이 이루질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릴 것이며, 후진 양성에 매진 할 것이다. 또한 그림자처럼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나의 후원자 남편에게도 날마다 행복의 종소리를 보낸다.

[박진선 민화 작가 약력]

1983년 한남대 미술교육과 졸업

1981년 충남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금상 수상

한양예술협회 초대작가

한국 전통민화협회 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전통민화협회 이사

오늘의 작가 500인전 출품

'가회아카데미회원전'외 다수 그룹전 출품

부스 개인전 1회(청주예술의 전당)

한양예술대전 장려상 외 다수 수상

한국전통민화 협회 우수상 외 다수 수상

송촌행정복지센터 출강

*소여 박진선 민화교실 운영

*대전 대덕구 대전로 1064 MH 빌딩 307

*연락처: 010-5053-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