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 기농 정세권 선생 기념 전시
서울시,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 기농 정세권 선생 기념 전시
  • 김주연
  • 승인 2019.04.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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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울(경성). 일본인들이 조선인보다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일본식 집이 늘어가는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낀 기농(基農) 정세권은 북촌을 비롯한 서대문과 왕십리 일대에 ‘조선집’이라 불린 근대 한옥을 대량 공급했다. 그는 또한 조선물산장려회가 침체기에 들어섰을 때 회관을 신축해 기증하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어학회에 회관을 지어 기증하고 각종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제 탄압으로부터 우리 민족문화인 한옥과 우리말과 글을 지켜온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의 삶과 활동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서울시가 4월 9일(화)부터 한 달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북촌 한옥청에서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를 지켜낸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을 기리는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정세권과 조선집」 전시회와 아카데미를 개최한다.

 시는 지난해 1월 26일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 서울시회, 국사편찬위원회, 종로구 등과 ‘정세권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협력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2월 27일 ‘일제강점기 디벨로퍼 독립운동가 정세권 선생’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정세권 선생 기념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4월 9일(화) 오후 2시에 북촌 한옥청에서 전시설명 및 현장투어로 문을 열며, 오후 3시부터는 가회 2층 전망대에서 ‘북촌, 한글…그리고 정세권’이란 이름의 아카데미 1회가 진행된다.

 강맹훈 도시재생실장과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해성 3.1운동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 김영종 종로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오픈식은, 개회사 및 전시장 해설이 이뤄진다.

 이후 북촌한옥마을 정류장으로 이동해 이번에 종로구에서 정세권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버스 정류장 명칭을 ‘북촌한옥마을․돈미약국’에서 ‘북촌한옥마을․정세권활동터’로 바꾼 의미를 설명하고, 정세권 선생이 기증한 조선어학회터를 방문하는 여정으로 진행된다.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시민을 대상으로 열리는 아카데미에서는 강맹훈 도시재생실장의 ‘북촌 가꾸기 사업과 서울’, 서해성 총감독의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 서울대 김경민 교수의 ‘정세권을 새롭게 만나는 방식’ 등의 강연이 이뤄지며, 이후 ‘북촌에서 새로운 집 찾기’란 이름으로 북촌 지역을 답사하게 된다.

 4월 9일부터 5월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정세권 선생의 활동 연대순으로 ▲경성을 조선집으로 지켜내자 ▲조선 사람은 조선 물산으로 ▲ 북촌은 한글이다 ▲조선집, 영화를 통해 살아나다 등 크게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정세권이 주택을 공급한 지역을 지도상으로 살펴보면 ‘ㅅ’자 날개 모양으로 서울 전역에 펼쳐져 있어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구성을 ‘ㅅ’자에 모티브를 두고 기획했으며, 전통한옥과 도시형 한옥의 차이를 보여주는 재료인 ‘함석’을 전시에 사용했다.

 첫 번째 섹션인 「경성을 조선집으로 지켜내자」에서는 서울 전역에 ‘ㅅ’자 방파제 모양으로 한옥집단지구를 조성한 ‘건축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developer)’로서의 정세권을 조망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식 집이 늘어가는 현실에 위기를 느껴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건양사’를 설립해 조선집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등 주택사업을 펼치게 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정세권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왕실과 양반층의 대규모 주택을 매입, 토지를 나눠 10~40평형대의 작은 규모의 한옥을 중산층 이하 서민층에게 공급했다. 1930년 동아일보에 실린 분양광고를 보면 관철동과 낙원동, 관훈동, 소격동, 봉익동, 재동, 창신동, 사간동, 수송동, 체부동, 안국동, 익선동, 계동 등에 조선집을 신축해 분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더 위생적이고 실용적이며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한옥의 가운데에 중정을 두는 전통 한옥 방식에서 벗어나 한옥 가운데에 건물이 있는 ‘중당식(中堂式) 한옥’을 설계하고, 처마에 함석을 사용하는 등 실용성을 더한 ‘조선집’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인 「조선 사람은 조선 물산으로」에서는 조선물산장려회를 통해 조선의 상공업 부흥과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애쓴 정세권을 조망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백난중분투(百難中奮鬪)하는 정세권 씨에게 감사하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조선물산장려회 회관을 신축해 기증하고, ‘장산사’를 설립해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재정적으로 지원한 정세권의 ‘민족기업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불황과 일본 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으로 조선의 상공업이 위기에 처하고, 일제의 ‘시장 식민 정책’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세권은 1928년 조선물산장려회 경성지회 이사로, 1929년에는 상무이사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선물산장려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그는 회관을 신축해 기증했고, 3년간 경상비와 기관지 발행비용 등 재정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으며 1930년부터는 전임 상무로 조선물산장려회 사업 전반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또 1931년에는 조선의 물산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조선물산장려회관의 부지와 건축비를 제공했고, 건양사와는 별개로 ‘장산사’를 설립해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펼치게 된다. 조선물산장려회의 기관지의 하나인 「장산」은 장산사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최근 서울시는 정세권이 기증한 조선물산장려회 건물터를 찾아내 이곳에 표석을 설치할 계획이다.

 세 번째 섹션인 「북촌은 한글이다」에서는 최근 영화 <말모이>로 조명 받은 조선어학회를 지원하고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체포되고 재산을 몰수당한 ‘민족운동가’ 정세권을 조망한다. 1930년대 중반 내선일체를 표방하며 우리말과 한글을 탄압하기 시작한 일제에 맞서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에 들어간 조선어학회에 재정을 지원하며우리말과 글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고초를 겪은 정세권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물산장려운동 활동 중 만난 이극로를 통해 조선어학회에 참여하게 된 정세권은 1935년 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는 등 조언어학회 운영자금을 계속 지원했다.

 1942년 정세권은 이극로, 최현배, 한징, 안재홍, 이윤재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정세권 선생의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홍원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1943년에는 경제범으로 몰려 동대문경찰서에 수감되었고, 토지를 몰수당했다.

 네 번째 섹션인 「조선집, 영화를 통해 살아나다」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제작된 흑백영화 중 전통한옥과 조선집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미몽>(1936), <반도의 봄>(194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 10편의 영화를 편집해 상영해, 조선집을 간접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4월 9일에 이어 ‘북촌, 한글…그리고 정세권’ 아카데미는 4월 20일(토)과 27일(토) 등 총 3회에 걸쳐 개최된다.

 4월 20일에는 고려대 박용규 교수의 ‘정세권과 우리 말, 우리 글’, 한신대 이해영 교수의 ‘조선집은 집으로 지은 애국가’ 강연이 진행되고, 4월 27일에는 한국문화도시연구소 정기황 소장의 ‘새로운 조선집이 나타난 이유’,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김란기 대표의 ‘정세권이 만든 조선집’, 해리티지프로젝트 이지은 대표의 ‘일본인의 북진을 막아라’ 등의 강연이 이뤄진다.

 기농 정세권 선생 기념 전시회와 아카데미를 총괄 기획한,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은 “정세권은 식민지 시대에 한옥을 지어 한글을 지켜냈다.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도시형 한옥은 서울 전체를 놓고 봤을 때 ‘ㅅ’자 형상을 이룬다. 한옥 자체가 ‘ㄱ’자, ‘ㄷ’자, ‘ㅁ’자 형태이기도 하다. 조선집(한옥)과 조선말(한글)은 이렇게 어우러졌다. 정세권네들이 만들어낸 한옥 단지 북촌은 식민지 시기 저항문화 유산이다. 민족문화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집’과 ‘말’을 중심으로 민족 전통과 생활과 언어를 재창조, 재구성해내는 데 정세권이 스스로 감당한 구실에 비해 그 동안 평가는 거의 없었다. 정세권 인생에서 1919년 3.1운동은 뿌리와도 같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세권과 한옥, 또 북촌은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이번 전시는 오늘날의 북촌과 익선동을 태동시키고, 우리말과 글을 지킨 정세권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며 “건축가이자 디벨로퍼이며, 민족기업가이자 민족운동가였던 정세권 선생의 유산인 북촌한옥마을 등 서울시 곳곳에 남아있는 도시형 한옥을 도시재생과 접목해 역사문화 도시재생사업을 꾸준히 펼쳐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