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소나무 아래 가면 큰 고요를 만날 수 있다는 송불암에 다녀왔다. 풍경소리가 절 마당에 봄빛처럼 퍼지던 날이었다. 논산시 연산면 황룡재로 92-18번지. 대전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었다. 사찰을 지키고 있는 경봉스님은 “정신적으로 쉴 수 있다면 그곳은 고요한 곳”일 거라며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이 천년을 묵묵히 살아있는 소나무 아래서 큰 고요를 안고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설차를 앞에 두고 나눈 스님과의 대화는 물 흐르듯 유연했다./편집자 주

△재수시절

21살에 출가하기 위해 연고 없는 송불암으로 오게 된 건 우연인 듯 필연인 것처럼 느껴졌다.

“학창시절 영어를 잘했어요. 공주사대부고를 나와 영문과 진학에 실패하고 신원사에 들어가 재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절에서 입시공부에 매달리던 어느 날 절에 혼자 남게 되었어요.적막하게 부는 바람을 따라 걸었습니다. 2시간쯤 걷다가 대웅전 계단에 무심하게 앉아 있으니 풍경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궁금했습니다. 듣는 귀와 느낌의 본체가 몸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어요.”

스님이 입시공부를 접고 불교경전을 읽게 된 1974년 어느 날의 모습이 환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경봉스님은 인생 80년이 주먹 한번 접었다 펴는 시간이라며 언제라고 말할 수 없는 현재가 영원한 허공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자 부처님 공부를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말 한마디를 가르쳐주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입시공부를 하는 대신 1년 6개월 동안 법구경, 화엄경 등 불교 경전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제 기쁘고 오늘 슬퍼하는 나라고 하는 느낌의 본체는 무엇인지 ‘이 뮛고?’란 화두에 매달린다. 그때 당시 그것이 참선 수행인지도 모는 채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한 자세로 하루가 지나가기도 했다고. 그렇게 6개월을 ‘이 뭣고?’에 매달렸고 그 후로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았단다, 물결 흐르는 대로 가면 되었다고, 유유자적한 삶이었다고 했다.

△출가

스님은 달빛 꿈을 꾼 새벽녘 출가를 위해 집을 떠났다, 마곡사로 갑사로 돌아다니다, 저녁 5시 쯤 우연처럼 찾아간 곳이 송불암이었다.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의 누옥이었다. 비구니 스님 두 분이 살던 곳으로 택시 기사가 내려 준 곳에 들어서니 주지스님은 올 줄 알았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지스님은 달을 따서 품에 안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사형은 밝은 달이 송불암을 환히 비추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두 분의 말에 하루 묵고, 다음 날 수덕사로 떠나려는 마음을 접었다. 이곳이 자신이 거처할 곳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 것. 그렇게 절 생활이 시작됐다. 나무하고 밥하고 차를 내고 여름에는 콩밭을 맸다. 가을에는 상수리를 주워, 내다 팔아 털신을 샀고 내복을 샀다. 가난한 절 생활이 평화로웠고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전기가 없어 촛불을 켜놓고 12시가 넘도록 염불 공부를 하고 있으면 멀리서 부엉이가 울었다. 1975년이라는 세월을 잊고 어제와 내일이 끊어진 순간순간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25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스님은 콩밭 매는 재미가 좋았다고 한다. 가을날 콩을 널어놓고 도리깨질을 하면 하늘 위의 정기가 도리깨채를 통해 살고있는 절 마당에 내려오는 것 같았다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산에 가서 나무하는 일도 밤이면 누더기를 기우는 일도 즐거움이었고 청국장을 띄우는 일도 모든 것이 환희로움이었다고 전한다.

△수행

경봉스님은 동학사 강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대전 세등선원, 지리산 대원사, 실상선원 등을 돌며 참선에 정진했다. 오랜 세월 참선하는 동안 깨침이 안 일어나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참선 도중 만난 능엄경은 그 어떤 경전보다 와 닿았다. 능엄경 한 줄이 귀에 스친 복연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스님은 “어제 일을 잊고 오늘을 산다”고 했다. “너를 만나면 네가 되어주고, 인연에 맞춰 화목하게 지내고 싶다”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소망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스님은 청소년을 위한 명상 수련원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우리의 토종음식을 배우고 먹으며 한국의 문화를 한 도량 안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송불암 행사

음력 5월 5일이 되면 천년 소나무 탄생을 축하하는 ‘목신제’가 열린다. 이날 송불암을 찾은 대중들에게는 절 주변에서 자란 머위를 채취해 머위탕을 끓여 대접한다. 7월 17일에는 ‘배롱꽃나무 아래서의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이날 오신 분들에게 보리밥을 대접하고 싶어서 행사를 여는 것이라고 속 깊은 마음을 전하는 스님의 표정이 참으로 평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송불암을 떠나오며, 다시 찾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도복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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