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천사 새벽예불에 합장한 두 손

“마음을 내려 놓으라”

“뜨는 해도 다보고 지는 해도 다보고/ 그 어느 날 하루도 살지 않은 것 같아서/ 굽이굽이 룡천사 가는 길/ 시를 읽어 내려간다/ 버들잎 싹트는 봄 푸른 창 제비 등 되어/ 먹물 옷 금강경 님 싣고/ 저 푸른 창공 하늘 높이 나르는 승려/ 꽃은 보고 나는 합장을 한다” 그녀는 어머니였고 시인이었으며 승려였다. 8년 동안의 불사를 마친 ‘룡천사’ 새벽 기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딸의 아픔으로 시작한 기도가 이제는 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을 위한 기도로 바뀌었을 뿐, 그녀의 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깊은 산 돌고 돌아 찾아간 ‘룡천사’에서 원광스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편집자 주

△딸의 아픔 그리고 출가

“17년 전 대학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딸 희정이 중·고등학교 임용을 앞두고 아프기 시작했다. 바르고 지혜로운 딸이었다. 이 병원 저 병원 수도 없이 다녔지만, 이유도 고칠 방법도 알길 없는 발병이었다. 그렇게 똑똑하던 딸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어 제 앞가림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새벽마다 일어나 무작정 달렸다. 아이를 고쳐달라고 달리면서 어디에든 매달리고 싶었다. 동학사에 올라가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가슴을 치며 하늘과 땅에 나무와 공기에 ‘내 아이를 되돌려 달라고 사정했다.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자식을 위해서라면, 더구나 갑자기 아픈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2004년부터 아픈 딸을 데리고 팔공산, 서울 삼각산 관음사. 동학사 등 전국의 사찰을 돌며 기도에 집중했다. 한 사찰에서는 아이가 고쳐진다는 말에 샘을 퍼내고 수세미로 우물을 닦기도 했다.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 룡천사에서 만난 원광 스님은 지난날 이야기를 하면서 먼 하늘에 시선을 두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부처님 법을 만나고 비구니계를 받아 출가한 스님의 인생이 눈빛에, 가지런히 합장한 손끝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서울승가대학과 동국대학교 사찰 경영학과를 졸업한 원광스님은 절박한 심정을 담아 시를 쓰는 시인으로, 부처님 공부로 원력을 쌓아가는 스님으로 여전히 정진하고 있었다. 현재, 8년에 걸쳐 불사한 ‘룡천사’에서 어머니와 함께 출가한 딸 해인스님과 함께 고요한 날들을 기도로 보내고 있었다.

△룡천사

군북면 답양리 막지길 204번지 대청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봄이 되면 산벚나무가 군락을 이룬다고 했다. 절 한쪽으로 바위와 대나무 군락지가 인상적이었다. 쌓아 올린 몇 개의 돌탑을 바라보다 스님이 쓴 시화가 눈에 들어왔다.

‘비구니스님 태교를 한다/ 서른한 살 딸 십여 년간/ 금강경 외는 소리/손 눈썹 떴다, 감았다/ 가랑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미는 딸을 데리고 절마다 돌아/ 장고개 장수사 절집 스님이 되었다/ 새벽 세 시마다 딸을 보며/ 딸 다시 임신한 배를 삼고/ 소리꾼처럼 목탁을 치며/ 태교를 한다. 방 안의 딸/ 목탁 소리 들으며 염주알 굴린다/ 미끄러지듯이 잠이든다/ 세상 밖에 다시 태어날 준비인가/ 마당 연꽃 봉오리 이슬 한 방울로 맑기만 하다/ 벚꽃은 눈발처럼 목탁에 떨어져/ 코가 시리다/ 소쩍새는 스님 목탁소리 애달프게/ 합장한다/ 덩친 큰 은행나무 까치/ 하나 둘 셋 까악까악/ 아침마당에 내려앉는다/ 목련꽃 절 마당에/ 아기 기저귀처럼 눈부시다’ 원광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시다. 가슴이 시려서 읽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읽는다.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게 눈물이 되고 시가 되어 세상을 품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다

아무리 극한의 상황을 돌아왔더라도 화엄이 우리를 도와 이 자리에 온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스님은 “마음을 내려 놓으라”고 조용히 전해주었다. “너도 부처고 나도 부처”라며 “제대로 된 선지식을 만나면 폭포수 같은 청정수가 나온다”고 나즉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리 고통스런 상황에 놓일지라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아 해탈 수행으로 나가야 한다는 원광스님의 언어는 언어를 뛰어넘은 삶으로 다가왔다. 스님이 걸어온 길이었으니 말이 아닌 ‘생’ 자체일 것이다. 자식이 아픈 상황에서 깨달음의 길이 아니고서는 그 고통을 뛰어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법을 통해 고통에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그 아픔으로 세상의 또 다른 아픔을 품는 큰 마음을 갖게 된 것이리라. 원광스님은 “룡천사를 통해 아픔 있는 많은 이들이 부처님의 법을 믿고 깨달음의 길로 나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 깨달음으로 지상에서의 수많은 고통에서 놓여나길 어머니의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도복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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