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편 전 옥주 박사

[불교공뉴스-국제]한국의 정서를 털어야 인도네시아의 현지생활에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식으로 잠시 나의 인생을 투시하던 체험담이다. 아무리 인종이 다르고 정서가 다르다 해도 사람의 감정과 생각은 아마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착오가 있었다.

저자는 귀국하기 전까지 마치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적응해야한다는 어떤 강박 관념 같은 면도 조금은 있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시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홀딱 지나 가버렸다. 인도네시아 파견근무 나온 지 이제 25일 정도 남겨 놓고 주위를 정리하고 귀국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는 나름대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2년이라는 기간을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해외봉사에 도전했다. 그리고 어떤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의 원천은 저자의 마음 안에 있었다. 나름대로 견문을 넓히는데 도전 했고, 2년이란 세월을 통해서 인도네시아를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알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이번의 글은 인도네시아식의 문화를 재미있게 느끼게도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 일을 당하고 있던 당사자의 마음은 애타고 큰일을 당 할까봐 걱정을 하던 체험담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정서의 차이를 절실히 느낄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나면 ‘코미디’를 보고나서 혹은코미디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아 맞아, 그럴 수도 있겠다.」그곳 현지에서는 말이다. 라고 공감대가 형성 되어 웃음을 유발 시킬 수 있는 이야기이다.

웃기기도 하면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연을 전한다. 저자가 인도네시아에 도착 후 임지에 파견되어 살면서 현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자주 듣게 되던 말들이 있다.
①‘뚱구야:tunggu ya’와 ②‘사바르야:sabar ya’랑 ③‘스분따르야:sebentar ya’와 그리고 ④‘난띠야:nanti ya이다.

①부터④까지 단어의 뜻은 ①기다려, ②참아, ③잠깐만, ④다음에, 라는 뜻으로 결국은 네 단어의 의미는 '느리게' 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식의 느리게 사는 법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사건은 바로 이렇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나의 집 앞의 큰 나무가 쓰러졌다. 그러자 갑자기 전기 불도 나가서 집안이 온통 캄캄했다. 게다가 전기가 나가니까 수돗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도관마저 터져 버렸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날 이였다.

그래서 인전(인도네시아 전력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할로우~ 여기 나의 집에 전기 불이 안 들어와서 전화 드렸어요.” 하면서 거목이 쓰러진 내용과 함께 사정이야기를 전했다. 그랬더니 인전 직원이 하는말은 '이브:Ibu', ‘뚱구야:tunggu ya(사모님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나의 집 주소를 전달 받아 기록을 했다.
 
그래서 나는 곧장 인전 직원이 작업을 하러 오는 줄만 알았다. 무작정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5시간 정도가 지나 가 버렸다. 오후 7시정도가 되니까, 인도네시아 메단 지역의 전력회사 측 사람들은 모두 퇴근을 했고 전화를 걸어도 직원들과 전혀 연결이 안 되고, 전화를 걸면 그냥 바로 녹음 되여 있는 음성 전화로만 연결이 되어졌다.


그날 밤은 혼자 미치는 줄 알았다. 집 앞에 나무가 여러 개 쓰러지던 날, 정확히 인도네시아 전력회사에 전화를 19번이나 전화를 걸은 기억이 난다.

(비바람이 억세게 불어 인도네시아 나의 집 앞의 큰 나무가 쓰러졌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가? 내 집 앞은 폭탄 맞은 전쟁터 같았다)

나는 애타게 답변을 기다리면서 걱정하는 마음뿐이다. 마음은 어찌 할 바를 몰라 답답해 미칠 지경인데 인도네시아 전력 측의 직원들 모두는 그야말로 강 건너 오리 알 보듯이 하면서 말만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람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듯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이다.

전화를 받는 인전 직원들은 번갈아 가면서 전화로 하는 답변의 말은 ‘뚱구야:tunggu ya’와 ‘사바르야:sabar ya’야 ‘스분따르야:sebentar ya’ 또 ‘난띠야:nanti ya. 라는 말을 돌려 가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혼자 생각 했다. 지금 상황에 나는 다급한데 현지인들이 장난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역시나 하는 생각으로 저자는 생각 했다. 인도네시아 국민성은 온순하면서 낙천적이고 느슨해 보이는 면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의 속마음은 인도네시아 전력직원들이 정말로 못 되고 나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집안에 담벼락에서는 빗물이 세어 나고, 방안의 천장은 너덜너덜 아슬 하게 달려있다. 억센 인도네시아의 비바람 때문이다.)

집 안의 천정 위에서는 빗물이 새고 천정 한쪽은 세찬 비바람에 천청이 뚜껑이 뚫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데 전력공사 측의 공무원들은 이미 퇴근한 상태라서 정말 걱정 되고 무서웠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 집 현지인에게 부탁을 했다. 이웃집마저 같은 상황이라서 이웃집 현지인도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저 ‘사바르야:sabar ya’야 라고만 하더라고 이웃집 현지인 아줌마가 말한다. 나는 참다못해 너무 화가 나서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인도네시아 전력 회사를 찾아갔다.

도대체 이해가 안 돼서 직접 찾아갔다. 그런데 먼저 인전 여직원이 나를 알아본다. "혹시 한국 분 아니세요? 지난주에 신문에 실려 나온 내용을 읽어 보았어요." 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인터넷에 저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미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저자는 이미 인도네시아 인터넷 Google에 이름을 검색 하면 저자가 KOICA의 봉사단원임과 여러 미용봉사 활동의 내용이 있다. 나는 인도네시아 봉사 생활이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했다.
저자가 살고 있는 수마트라 메단은 한국의 두 배만한 곳이다. 이곳의 최고 우두머리인 주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저자는 미용교육과 동시에 한국어 교육까지 하고 있다.
 
주지사의 두 딸이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주지사가 나에게 한국어 교육을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수마트라의 최고 지도자인 GATOT의 아내가 인도네시아의 추억거리라면서 인도네시아 전통 옷인 바틱을 두벌이나 선사했다. 그래서 저자는 답례품으로 KOICA의 달력과 한국의 관광지 책을 드렸다.
신문에 7일 동안을 연달아 미용에 관련된 헤어쇼 와 패션 쇼 그리고 워크숍등을 계속해서 기록한 것을 그 여 직원은 읽어서 나를 알아 본 것이다. 다행히 그 이유에서인지, 전력회사 여직원은 나에게 친절을 배풀어 주는 듯 했다. 나를 알아보는 여직원 덕분에 인전 전력회사 안의 분위기가 조금 가깝게 느껴져서 어색하지 않았다.

나의 집 상황과 속상함을 전력회사 여직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나는 어제 기다리라고 해서, 반나절을 기다렸었는데 왜 나의 집에 오지 않았느냐? 물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면서 전력회사 여자 직원이 또 하는 말이 '이브:Ibu', ‘사바르야:sabar ya’야(사모님 참으세요) 라고 말을 한다. 이 ‘사바르야:sabar ya’야 라는 단어는 현지인들에게 생활 속의 문화인 것이다.

한국 사람인 나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냅다 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참는 것도 어느 정도라면 이해를 하겠으나 이건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면서도 조금은 걱정을 했다. 왜냐하면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들의 문화로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면 정신이상자로 보기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나의 집에 물도 안 나와서 학교에 출근도 못하고 밤새도록 캄캄해서 무서웠다. 라고 하면서 그 여직원에게 당장 나의 집으로 같이 가보자고 권했다. 사무실 안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지 전력회사 측 간부로 보이는 한 남자 직원이 내게 와서 미안하다면서 나를 진정시키려 했고 또 그 간부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스분따르야:sebentar ya’말을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정말 미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휴, 정말 무조건 참았더니 답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냥 크게 웃고 말았다.
 
정말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현지인들도 사람인지라 그 순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간부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잠시 후에 또 ‘난띠야:nanti ya라고 말을 한다.

그 순간 정말 화를 못 참았다. 아우, 외국에서 사는 서러움이 바로 이런 면에서 느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한국 아줌마의 기질이 나오기 시작 했다.

나도 모르게 무의적으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차분하게 말을 전했다. “Karena orang asing, jangan sembarangan”(외국인에게 함부로 하지마라). 그리고 조금 전에 내가 ‘화를 내서 미안하다’. “민따minta 마아프:maaf ya.” 라고 했다.

















(세찬 비바람 때문이다. 나의 집 앞에 여러 개의 거목들이 넘어졌다 )

그리고 지금 나의 집은 ”Sangat Buruk"(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을 했다. 전봇대의 전기선이 끊어지게 생겼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내용을 조근 조근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Saya cemas...karena rumah(나는 집 때문에 걱정이다.)라고인전에 있는 간부직원에게 말했다. 아까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은 "Walaupun begitu, benar benar bemci"(그런 태도 정말 싫다.) 당신네들이 말 하는 것처럼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다. 라고 울분을 참으면서 분명히 말을 전달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나는 너무 참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글썽 거렸다.

아마도 혼자 외국생활의 어떤 힘들고 서러움 같은 느낌에서 오는 눈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 크게 울먹이면서 말을 전달했다. 그래야 현지인들에게 분명히 전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Anda sudah keliru’(당신 실수 한 거야)라면서 “Jika anda adalah saya"(당신이 나라면)tidak marah?(화 안 나겠냐?)등등. 그리고 Coba pikir kalo tukar posisi(바꿔서 생각해 봐라.) 라고 말을 하면서 너무 속상해서 그만 그 자리에서 울어 버렸다.
(저자의 인도네시아 집이다. 수도관마저 터져 버렸다)

현지인들이 대체로 이렇다. 분명하지 못하고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이 현지인들의 특징이다. “잘못 되면 나의 집에 불이 날 수도 있다.” 고 말을 했더니 전력회사직원 측의 현지인들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서 전력회사 측 자동차에 나를 태우고 남자 직원들 네 명이 우리 동네에 도착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전기 줄을 덮어 매우 위험했다)

(인도네시아 메단 전력공사 직원들이 복원 하려는 모습이다)

결국은 와야 할 장소인데, 조금 빨리 서둘러서 와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답답하다는 생각에 나는 인도네시아 전력공사 직원들에게 물어 보았다.

조금 더 빨리 서둘러서 올 생각은 없었느냐고 말이다. 그들은 모두 웃음으로 얼버무려 넘기려 한다. 이렇게 분명하지 못한 태도는 다른 면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나중에는 간부직원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에게 미안하다면서 사과의 말을 하기에 나의 자존심은 그 나마 견딜 수가 있었다.

그때의 일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지긋지긋한 날 이였다.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늦은 밤에 속이 쓰려서 고생을 했다. 스트레스가 위경련으로 온 것 같았다. 정말이지 사람의 앞일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외국에서의 일은 더욱 조심스럽다. 그러므로 해외에서 봉사하는 동안은 그저 늘 조심 하는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전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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