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불교문예’ 발행인

‘현대불교문학상’제정

‘불교작가회’ 운영

‘산을 떠나/ 도심 생활 십여 년// 어느 여름/ 그 절에 들렀더니/ 새벽예불 목탁 소리 끝날 무렵/ 어디선가 잊고 살았던 두견새 울음소리// 한지창 열고 도량에 나가보니/ 푸른 나뭇잎 위로/ 찌든 눈을 맑게 씻어주고// 새소리가 막힌 귀를 열어 주고/ 맑은 공기가/ 콧구멍을 뚫어준다// 걸망 맨 지 삼십여 년/ 그 시절로 되돌아와 계곡 물소리에/ 가슴 열어 놓는다// 옥자갈이 서로 낯 부비며 굴러간다’ 혜관 스님의 시 ‘다시 산에 들다’의 전문이다. 이 시는 그의 두 번째 시집 ‘찻잔에 선운사 동백꽃 피어나고’에 수록되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가 출가해 수행의 길을 가는 스님이란 사실을 시를 읽으며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는 계간 ‘불교문예’ 발행인으로 ‘현대불교문학상’을 제정했고, 한국 최초로 통일불교문학관을 설립 올 3~4월경 개관할 예정이다. 스님으로 문학인으로 최선을 다해 걸어온 그의 삶을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문학으로 포교활동

혜관은 1976년 해남 대흥사에서 기산스님을 은사로 약관의 나이에 출가한다. 불국강원에 입방 노스님 시봉을 하며 수학하다 중앙승가대학에 입학한다. 불교개혁이 한국불교를 지켜갈 수 있다고 판단해 조계사에서 승려대회와 단식을 하며 불교개혁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승가대학 졸업후 문학에 뜻을 두에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때 서울 개운사에서 3년 동안 총무 소임을 맡는다. 1980년대 후반 젊은 스님들이 포교에 뜻을 두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문학 포교원’을 연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포교를 위한 불교문학 단체를 이끌어 온다. 그는 또한 1989년 시조문학에 등단하고 25년 간 시인으로 살아왔다. 그는 홍은동 문학 포교원에서 계간‘불교문예’를 만들며 불교문학 포교를 위해 20년 세월을 바쳤다. 수완·로담 등 뜻이 맞는 도반과 함께 ‘현대불교문인협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불교문예’를 창간해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그는 문학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것을 지향했다. 홍은동 불교문학포교원에서 ‘청소년글짓기교실’,‘주부문학교실교실’, ‘작가수련회’ 등을 연다. 또한 계간지 ‘불교문예’를 발행해 수많은 불자 문인들을 배출해낸다. ‘불교문예’를 통해 배출된 시인만도 100여명이 넘는다. 이뿐 아니라 ‘현대불교문학상’을 제정, 나태주, 최동호, 이근배, 최하림, 정현종 등 80여 명의 국내 시인들에게 문학적 성취감과 창작 의욕을 고취시킨다. 이같이 다양하게 문학 포교 활동을 해온 혜관은 20대부터 40대까지는 주로 문학 집필 활동에만 힘써 왔다고 했다. 그러다 40대 이후 ‘계간 불교문예’, ‘현대불교문학상’, ‘불교작가회’ 운영에 힘을 쏟는다. 혜관은 ‘문학 포교 활동은 힘든 고비가 많았다“며 ”경연난이나 여러 사람들과 하나의 뜻으로 나가는 길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고 그간의 소회를 전했다.

 

△최초 ‘불교문학관’ 개관

통일불교문학관 개관이 얼마 남지 않았다. 3월이나 4월쯤 완공되고 개관할 것이라고 하니 많은 문학인들의 기대가 크다. 불교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많이 있으나 문학관으로서는 이번이 최초다. 혜관은 문학관 건립을 위해 오래전부터 불교 관련 문학 서적을 모아왔다. 5년 전부터는 이 일을 집중적으로 했다. 그 결과 그는 홍사용의 1922년 ‘백조’ 1,2,3 창간본과 폐간본을 구했다. 최남선의 ‘소년지’(조선문단), 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 초간본(1926), 정지용 ‘백록담’(초간본) 등을 수집하기도 했다. ‘통일불교문학관’에는 ‘동승’, 오세암 등 60~70년대 소장 작품을 상시 소장할 것이다. 불교계 문학관으로서 최초로 운영될 이곳에서는 우수문학작품 전시는 물론 시낭송과 문학 강좌 다채롭게 이어질 거라고 했다. 문인들과 스님들이 토론을 거쳐 운영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문학관 운영에 관한 계획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불교문학관을 건립하게 된 동기를 묻자 스님은“부처님 곁에서 글을 쓰거나 불교를 소재로 한 글은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쳐 많은 작품이 있었다. 등단 스님들만도 50명이 넘고 이들은 한국문인협회에 10명 신춘문예 출신도 있었다”며 “통일문학관은 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월북이나 납북된 후 뒤늦게 해금돼 독자들 곁에 오게 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일제강점기 스님들이 대중가요나 시를 통해 민중들에게 삶의 위로를 주었다. 이것이 인생이고 포교였는데 이를 알리는 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

혜관은 출가한 스님으로 ‘불교문예’발행과 불교문학관 개관 등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이것은 문학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문학을 통한 포교 활동이 그 주된 목적이었다. 이십여년 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는 어느 날 시냇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춘다.

‘백련사 숲길에/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포행하는 것을 보아 왔는데// 어느 날 숲 길 계곡을 걷다/ 맑은 시냇물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나도 어디쯤 왔나보다’ 장영우 문학평론가는 ‘세월’이란 시를 통해 “혜관은 아름다운 수행적 삶을 살다간 정신적 스승들을 기리며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며 “그가 전국 사찰의 부도탑이나 다비식을 찾는 것도 그들의 올곧은 삶을 통해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자신을 되돌아보는 한편 법거량을 해보려는 호승심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급했다. 삼각산 자락 끄트머리 ‘불교문학포교원’에 십여 년째 거처를 마련하고 지내온 스님은 어느 날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어느새 노장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맑은 시냇물에 제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정직하고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도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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