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스스로 깨닫게 하더라”

출가하고도 다시 독립을 한 스님이 있다. 또 다른 질서에 갇힌 종교 생활을 벗어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는 분이다.

여행을 떠나고 그림(선화禪畵)을 그린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길 원한다. “나이가 들어도 더 젊고 앙징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공문스님. 똑같은 프레임에 갇힌 절집 문화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며 그는 독자적으로 혼자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사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지리산 자락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아간다.

간혹 바람이 가는 길, 물이 지나가는 그 길의 뒷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지만 스님은 바람 같은 삶을 순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공문스님은 “자연은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며 답답하고 외로우면 자연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자연 안에서 살아가면서 다시 자연을 만나러 수시로 떠나는 삶은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쏟아지는 광고는 새로운 물건을 욕망하게 만든다. 물건을 소유하고 싶다는 일종의 세뇌,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걸어가는 모습은 일종의 위안이다.

젊은 시절부터 산그늘 아래서 살아온 스님은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고 세련되게 살아갈 것”을 조용하게 언급했다.

“일체의 아름다운 사물은 모두가 미를 원천으로 삼는다. 일체의 아름다운 사물은 미가 있어야 비로소 미가 된다. 인간 본질은 행복이며 유한과 무한, 순간과 영원이다. 변두리 산에서” SNS에 흑백 사진과 함께 올린 짤막한 메시지를 본다. 아포리즘에 가까운 공문스님의 글은 사진만큼이나 담백하고 깊다. 변두리 산에서 기거하며 퍼 올린 사유다. 깊은 산 스님의 사유가 궁금해 그 산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자락 절골에 위치한 작은 암자. 들어가는 입구부터 겨울나무 빈 가지를 빠져나온 바람 소리 가득한 곳. 스님은 인적 드문 그곳에서 홀로 기거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농가를 손수 개조해 지혜가 숨은 암자 지은암(智隱庵)이라 이름 붙였다. 지은암 창문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지리산 자락을 보고 있으니 세속의 근심 걱정이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다.

“섬진강 강가 여름 망초꽃 눈부시게 밝은데 강 건너 물새 한 마리 한가롭게 졸고 있네. 변두리 산에서”라는 스님의 메시지는 아마도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쓴 것이리라.

밖이 내다보이는 자리에서 차를 마셨다. 지리산과 함께 마시는 차 맛은 고요했다. 세상에 욕심낼 일도 없게 만드는 그런 장소가 있다. 지은암의 창가는 바로 그런 자리였다. 스님은 이른 새벽 그곳에 앉아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깊은 산중 외곽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30년 전 출가한 스님은 화가다. 서양화를 전공했다. 출가하고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현재도 암자 한쪽에는 작업실로 그리다 둔 그림이 놓여있었다. 서울, 부산, 광주, 전주 등에서 20여 회의 초대전을 했다.

“삶 자체가 아름답다. 스스로가 잘 닦아내면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난다. 나를 닦아내는 것 이것이 불교 공부다. 진리는 삶 안에 다 있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미의 바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스님의 맑은 눈빛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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