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장학기금1(전석순 선생)

국가로부터 처음 받은 독립유공자 연금 한 달분 전액이 한 사학자의 뜻에 의해 독립운동가의 출신지 하동군에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돌아와 지역사회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하동군은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이 30일 군수 집무실을 찾아 독립유공자 후손이 내놓은 연금 100만원을 후학양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써달라며 윤상기 군수에게 기탁했다고 밝혔다.

정재상 소장은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하동군과 함께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하면서 발굴한 부부 독립운동가 전석순(고전면·1900~1950)·제영순(하동읍·1911~1991) 선생에 대한 정부포상을 신청해 지난 광복절에 제영순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은 유족대표 전정자(유공자의 딸·74·대전광역시)씨 등은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과 김희곤 자문위원을 찾아 그간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독립운동연구에 작은 보탬이라도 됐으면 한다며 국가로부터 처음 지급받은 연금 한 달분 전액 100만원을 선듯 내밀었다고 정 소장이 전했다.

하지만 정 소장은 “제영순 선생의 숭고한 뜻이 담긴 이 돈은 제가 받아서는 안될 돈이라며 완강히 거절했으나 유족들의 거듭된 요청에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이 꿈꾸고 희망했던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에 쓰는 것이 보다 값진 일이라고 생각해 하동군장학재단에 선생의 뜻을 담아 장학기금으로 기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윤상기 군수는 “이번 장학기금은 지금까지 기탁한 그 어떤 장학기금보다 값지고 뜻있는 것”이라며 “독립운동가 전석순·제영순 선생과 정재상 소장의 아름다운 민족정신이 후세에 계승될 수 있도록 장학재단에서 잘 운용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영순 선생은 1928년 7월 경남 하동에서 근우회 하동지회 서무재정부장, 1929년 6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1931년 민족해방운동을 위해 ‘노동자’ 신문을 인쇄 배포하다가 체포돼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2년 대구에서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하고 ‘반제반전 격문사건’에 연루돼 일본경찰에 체포·구금됐으나 기소유예로 방면됐다. 1936년 하동출신 독립운동가 전석순과 혼인했다.

전석순 선생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체포, 1932년 일본 감옥에서 징역 7년형의 옥살이를 하던 중 피를 토하는 폐병으로 인해 2년 6개월 만에 석방됐다. 하지만 옥살이로 얻은 병으로 평생을 고생하다 1950년 7월 20일 어느 사찰의 암자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후 화장하여 산야에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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