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儀式)과 의식(意識)의 차이

이제 태고종은 변해야한다고 본다. 종단의 제도나 기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제도나 기구만으로도 종단체제를 이끌어가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지난 1년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보고 느낀 것은 우리종단 종도님들은 너무나 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특히 60대 이상에서 매너리즘 (mannerism: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을 느꼈는데, 종단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우선 두 가지 관점에서 종단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종단의 구성원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둘째는 시대와 대중에게 부응하는 종단이 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식이란 불교행사를 치르는 법식(法式)으로서의 의식(儀式)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불교의 고도한 심리철학인 인식론적(認識論的) 추리(推理)나 추상(追想)을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좀 깨어 있는 상태가 되자는 의미이다. 개인의 깨임은 바로 종단의 깨임으로 직결된다고 본다. 이제는 종단이라는 집단적인 감정이나 견해나 사상을 좀 바꿔 보자는 것이다. 사실, 태고종만큼 종지종풍(宗旨宗風)을 잘 드러내고 있는 표상(表象)으로서의 종승(宗乘)을 갖춘 종단도 드물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태고종의 종헌이라는 헌장도 너무나 잘되어 있다고 하겠다. 다만 종법의 경우에는 세세한 조항에서는 모순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선 손을 봐야하겠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종단의 규범으로서 너무나 훌륭하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런 종헌종법을 운영하는 종도들의 의식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태고종을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라면 종단의 중앙종무기관장과 지방 종무원장 등이다. 승정원 원로의원은 종단의 정신적 지도층에 속한다. 3원 가운데서는 총무원의 경우, 부장급 이상, 종회는 분과위원장과 의장단, 호법원장 부원장 호법위원, 초심원장 초심위원 등이 종단의 지도자층이다. 이밖에도 각종 원장 급과 위원장 급이 있다. 또한 종회의원도 종단에서는 매우 중요한 직능이다. 지방시도교구종무원의 국장 급 종무직도 의사결정권을 갖는 위치는 아니지만, 지방교구에서는 지도자급에 속한다. 어느 선부터 종단의 지도층으로 봐야 하는 문제는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정작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이제 좀 깨인 의식(意識)을 갖자는 것이다. 법식(法式)에서의 의식(儀式)은 잘하면서, 왜 종단관(宗團觀)에서는 구태의연한 견해와 고정된 관념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 종단이란 문제를 한번 돌이켜서 생각하는 사고(思考)의 전환(轉換)을 해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종단 지도자로서의 불교관 종단관 승려(니)관을 재점검하여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초발심(初發心)으로 돌아가서, 근본문제부터 의식(意識)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태고종 구성원 특히 지도층은 지금의 종단관(宗團觀) 가지고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 줬으면 한다.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사찰을 생각해보고, 교구를 생각해보고, 종단을 생각해보자. 사찰-교구-종단(총무원)-불교의 다른 종단(종파), 각 불교단체(승.재가)-타종교 등등. 한국불교-아시아불교-세계불교를 생각해보고, 한국종교-아시아 종교-세계종교를 생각해 보자. 태고종은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깊이 분석하면서 되돌아보는 자아분석(종단)을 해보자. 마을에서 지역사회에서 한국사회에서 한국불교태고종을 보고 대하는 위상을 냉정하게 객관화해서 분석해 보는 자기성찰(종단)이 있어야 한다.

의식의 변화를 통해서 종단을 업그레이드 하자는 것은 내적 변화와 성장으로, 종단을 혁신하는데 제도적 기구의 개혁이 아닌 구성원들의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종단 지도자층이 의식의 변화가 와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둘째는 시대와 대중에게 부응하는 종단이 되어야 한다.

불교 본연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가. 내적 성찰이 성불이라는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의 외적 사회화는 광도중생이다. 광도중생 즉 중생교화는 전법이면서 포교활동이다. 전법 포교마저도 어려운 과제라면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이다. 중생교화에 있어서도 방편이 다양하겠지만, 크게 보면 정신적인 교화로서 교리법문으로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 물질적 빈곤자에게는 물질적 보시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사찰이 물질적으로 좋게 말하면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대중을 위해서 베풀고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사찰이나 종단은 무용지물이 된다. 역사에서는 수많은 종교단체가 명멸했고, 부단히 신흥종교가 탄생해서 기성종교를 위협한다. 사회와 대중을 위해서 베풀고 도와주지 못하는 사찰이나 종단의 운명과 존립을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 출가사문으로서 종단의 지도자로서의 위치와 역할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냉엄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비켜가지 않는다. 시대와 대중에게 부응하지 못하는 사찰, 종단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옆에서 함께 하는 제26대 편백운 집행부는 적어도 이런 불교와 종단의 현재적 위상을 너무나 잘 파악하여 종단을 혁신하려는 종무행정을 펴고 있음을 지켜보고 있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의 종단혁신과 소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태고종이 변해야 산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단 내에는 총무원장스님과 함께, 종단의 실상,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뼈저리게 인식을 같이하는 동반자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 종단을 사실상 움직여가고 있는 시도교구종무원이나 종회와 초심원이나 호법원 등이 인식을 같이하지 않는다면, 종단혁신은 어려운 몽상일 뿐이다. 집행부만 애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종단 지도층이 다 같이 인식을 새롭게 해서 바른 종단관을 갖고 시대와 사회 대중에게 부응하는 새로운 태고종을 창조하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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