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도요들이 모여 있는 ‘사기막골’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아홉시였다. 화계사 법정스님과 약속한 시간이 무려 한 시간이나 족히 남아있었다. 해서 마을 초입 광장에 차를 세우고 새벽이슬이 채 걷히지 않은 도요마을을 잠시 기웃거렸다.

경기도 이천 도예촌, ‘사기막골’ 참 정감 가는 이름이다.

화계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형성된 공방 마을에는, 가마에서 구워낸 다양한 도자기들이 맑은 색으로 진열장마다 얌전히 앉아있다.

‘누굴 기다리는 것이냐고, 누굴 오랫동안 기다렸냐고....’

쇼윈도 속 수많은 도자기들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었다.

이천 ‘사기막골’은 천년 역사의 도공들의 혼이 깃든 마을이다.

그 역사가 흐르는 동안 도공들의 혼이 제자들과 그 자손들에게 대물림 되어왔고, 그 맥을 놓치지 않으려는 도공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천 도자기의 화려한 명성이 되돌아 온 것이다.

커다란 도자기 조형물을 세워둔 공방카페에 멈추고 섰다. 바지런한 공방 주인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공방 등불까지 환하게 밝혀주었다. 안으로 들자, 다양한 색과 형상을 한 도자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기도, 포개어 누워있기도 했다. 도공의 작업장과 전시장을 몇 바퀴 돌고 돌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도자기가 하나같이 제 각각 다른 목소리를 냈다.

‘사기막골’ 도자기, 그 단아한 자태와 고운 색을 마음껏 가방 가득 담고 공방을 나왔다.

멀리 설봉산이 보이는 듯, 가려있는 듯, 잠시 잠깐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듯이 굽이굽이 마을길을 돌아 화계사를 향해 내달렸다. 마을 끝 오르막길에 이르자 화계사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화계사를 품고 있는 설봉산, 그 역사가 소나무처럼 참 깊고 푸르단 말을 들었다. 바람이 몰고 온 신비한 이야기를 소문처럼 들려왔다.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의 끊임없이 각축전이 벌어졌던 전쟁터였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사연이 설봉산에 묻혔을까. 설봉산 첫 주인이었을 백제인들은, 석성(石城)을 쌓아 신라군에 대항을 하였고, 오랜 각축전 끝에 신라군에게 산을 내어주었다. 설봉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한 신라는 고구려와도 전쟁을 수차례 치르고,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과 죽음이 설봉산 자락 어딘가에 깊게 묻혀버렸다는 그 전설같은 역사 이야기를 오늘날까지도 바람은 소리 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랬었지만 결국 무열왕과 문무왕 그리고 김유신 장군들의 소망이 모아져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뤄낸 곳이 바로 설봉산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화계사 법정스님을 뵈러 가는 길이 엄숙하고 비장(悲壯)하기까지 했다.

또한 설봉산 ‘삼형제의 전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슴이 몹시 뛴다. 오랜 옛날 가난한 집에 늙은 어머니와 효성이 지극한 삼형제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설봉산으로 나무를 하러간 세 아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러 산으로 가게 되었고, 호랑이를 만나 벼랑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설봉산 자락 절벽에 서있던 삼형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숨어있다.

그런 유수한 역사와 전설을 품고 있는 화계사였다. 커다란 법고를 품고 있는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자비 경선은 자비선(慈悲禪), 걷기명상을 하는 길’ 이라는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걸으면서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기, 소리 무상 관찰하기, 몸과 마음 휴식하기, 소나무에 기대어 관계성 통찰하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성찰의 시간.... 제 스스로 깨닫는 찰나임을 알아차렸다. 서둘러 계단을 오른다.

법정스님의 하얀 연꽃 같은 미소가 가람 가득하다. 화계사 대웅전 뜰 앞, 뙤약볕이 촘촘히 내려앉아 부처님 말씀을 자갈돌마다 새기고 있는 듯 반짝인다. 대웅전 뜰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석가탑이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서 합장하고 삼배를 올린다.

‘칠흑 같은 어둠 소멸하고자 서원하오니 정성의 기도 받아주시옵소서’

기도문에 시선을 멈추고 그 안에 생각을 가둔다.

향로에서 향이 가득 피어오르고, 촛대의 불꽃은 움직임이 전혀 없이 타오른다.

‘보이더라도 내버려두고, 들리더라도 내버려두고, 느낌이 있더라도 내버려두고,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내버려두라, 스위치를 끄듯 마음의 움직임을 끄고 평온과 평화를 실현하라’

법정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가람 이곳저곳 불사하기까지의 과정과 정진 수행하는 과정을 들었다.

 

이십년 전, 법정스님이 화계사에 찾아들었을 때였다. 법정 스님은 언제 쓰러질 듯 대웅전과 요사채 모두 위태로웠다. 그런데도 법정스님은 모든 것을 시방삼세의 부처님과 화엄성중님의 가피를 받아 난제를 풀고 중창불사하리라고 굳게 다짐하며, 젊음을 오롯이 불사하는데 받쳤다고 한다.

중창불사를 하던 중, 터파기를 하는데 길이가 17미터, 높이가 10미터나 되는 거북바위를 발견했다. 흙을 걷어내자 둥근 청옥이 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연꽃 가득한 연못 불사를 하였다. 지금은 연못 자리에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전국 많은 불자들이 산거북바위를 보기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불사하는 와중에도 법정스님은 정진 수행하여 불자들과 중생들을 회향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

법정 스님은 2014년 전국비구니회장으로 당선되어 전국비구니 연합 발전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올해가 마지막으로 소임을 마칠 해인데, 그동안 해온 일들을 갈무리하는 시간이라며 앞으로의 계획과 소회를 밝혔다.

법정스님은 현 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99년 편백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2003년 혜초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중앙승가강원 대교과와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전국비구니회 문화국장과 감사를 역임했다. 또한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범패부문 이수자이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정기법회를 준비하기 위해 대웅전으로 들어선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발길을 옮겨 수도심 보살을 만나기 위해 공양간으로 간다.

공양주 수도심 보살과 마주하고 앉아, 지난 세월 화계사에서 일어난 미담사례를 들었다. 십오 육년 쯤, 법정스님을 처음 만났다. 부처님의 원력과 법정 스님의 기도 덕분에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제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 다만 죽는 그날까지 부처님 공양 올리며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공양주 수도심 보살의 눈빛이 백목련처럼 희다. 수도심 보살이 화계사에서 키우고 있는 진이, 마야, 반야 개들은 이미 화계사 행자라고 한다. 어떻게 행동을 하기에 그런 일이.....

“스님께서 염불하실 때 절대 짖지 마라, 남들이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마라.”

수도심 보살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화계사 진이, 마야, 반야 세 마리의 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도심 공양주의 말처럼 과연 법정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면 조용히 제 집으로 들어가 도를 닦는지 몹시 궁금했다.

화계사 신도회는 회장 백연화 보살을 중심으로, 총무 일심행 보살의 일심으로 그리고 많은 신도들의 공덕이 모여 커다란 행사 때마다 수천수만 송이의 연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정기법회 시작을 알리는 범종이 울렸다. 커다란 울림이 설봉산 가득했다. 신도들이 합장을 하고 대웅전 안으로 모여들었다.

법정스님의 염불소리에 혼란스럽고 복잡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굳어있던 몸이 가벼워진다. 졸린 듯 그렇지 않은 듯 혼미한 의식세계가 밀려온다. 저 멀리 아득한 너머에 법정스님의 염불소리만 들려온다.

정기 법회의 중요 행사로 ‘자비선 명상, 자비 경선’을 수행하는 의식을 배우고 체험을 한다.

법고를 품고 있는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보았던 그 글귀가 바로 법회 제목이었던 것이다. 걸으며 명상하기, 일명 걷기명상이다.

빨간색 깃발을 흔들어 보이면, 걷기 명상의 신호 ‘출발’을 알리는 것이다. 출발은 베풂의 지혜를 터득하는 수련과정이다. 노란색 깃발이 올라간다. 발바닥 감각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땅과 발바닥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다보면 의식이 깨어난다. 그러다보면.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진다.

녹색의 깃발이 올라간다. 멈추고 쉼, 잠시 멈추고 서서 평화를 바란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차리고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을 쉬는 것이다

다음은 흰색 깃발이 올라간다. 사랑과 연민, 관용과 용서의 시작을 알린다. 걸으면서 과거에 지나온 나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으며, 현재 걷고 있는 나도 머물지 않으니 없는 것이다. 모든 게 순간임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다음은 자비 경선 수행 과정이었다. 경선(鏡禪)은 거울명상이다. 앉아서 하는 좌경선과 걸어서 하는 행경선이 있다. 숨 쉬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자비심이 배양되는 수련과정이다.

이론과정과 실습을 자세히 설명한 법정스님의 음색마저 설봉산 자락 소나무처럼 짙고 푸르다. 드디어 대웅전 안에서 하는 수련과정은 끝이 났다. 다음은 점심고양을 가볍게 미치고 설봉산 명상센터에 올라가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걷기명상에 들어간다.

수도심 공양주의 정성이 가득한 메밀국수가 나왔다. 떡과 과일까지 공양하고 나자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마음에 고요가 찾아왔다.

자비선 명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녹색 깃발이 올라간 듯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찰나의 행복이 온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읽히지 않는 시간인 것이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대웅전 돌기를 시작으로 ‘걷기 명상’ 실전이 시작되었다. 설봉산 중턱 소나무 아래 명상센터가 있다고 한다. 모두들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선봉에 선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드디어 출발이다. 베풂을 깨닫는 시간이 오고 있다. 삶의 고달픔에서 벗어나고자, 탐욕과 부정을 버리고 이타심을 내어 베푸는 기쁨을 얻는 명상의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한발 한발 설봉산을 향해 발길을 내딛는다. 설봉산 명상센터로 가는 길은 능선이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다. 걷기 명상하면서 땅과 발바닥 감각을 알아차린다. 숨도 차지 않는다.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인가. 미래의 삶 또한 숨차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설봉산 명상센터처럼 자비심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천천히 일행을 따라 발을 내딛는다.

세 마리 개 진이, 마야, 반야는 법정스님의 염불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한 번도 짖지 않는다. 화계사 행자가 틀림없는 모양이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