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대담] 옛터민속박물관 김재용 관장
[힐링대담] 옛터민속박물관 김재용 관장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8.08.13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기사를 번역합니다

대전 동구 산내로 하소동에 위치한 ‘옛터민속박물관’ 김재용 관장을 만나 박물관을 열게 된 경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옛터민속박물관’은 전통한식당과 양식당(뻐꾸기둥지), 전통찻방 (뜸부기)등 다양한 볼거리와 부대시설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마당한가운데는 ‘마당에 모닥불 하늘엔 둥근달’이란 이름표를 단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지고 있으며, 매일 밤마다 아홉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 라이브 공연과 예쁜 여우들과 멋진 늑대들이 ‘달빛 사냥’을 하고 있다. 또한 인근지역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일 년 동안 3,500명이 체험을 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노인들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박물관 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질문1] 옛터민속박물관을 개관하기까지의 과정은?

맨 처음 1997년 3월 이곳 하소성에 박물관 첫 삽을 떴을 때만해도 민속박물관 개관이 쉽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동안 수집해둔 유물과 민속품을 전시할 장소를 물색하던 중, 마침 달이 뜨면 너무도 아름다운 이곳에 짐을 풀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전이 고향이라서 그동안 꿈꿔왔던 모든 것을 이곳에 쏟아 부을 수 있었다.

[질문 2] 옛터민속박물관 김재용 관장을 일컬어 ‘문화유산을 지키는 독립운동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옛터민속박물관은 2001년에 정식 개관을 하였으며, 2006년에 대전 4호 박물관으로 등록된 민속전문 사립박물관이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문화의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문화재 약탈과 유실이 많았다. 저는 1956년생이고 전후 세대이긴 하지만 모든 게 잿더미였다. 먹고 살기위해서 꼭꼭 숨겨두었던 가보들과 유물을 쌀과 바꿔 먹어야했던 시절도 겼었다. 그런데 열 살이던 때 유물의 소중함에 눈을 떴다. 확실히 남들보다 빨랐다. 우리문화를 지키려고 전답까지 팔았던 간송 정형필 선생의 뜻을 받들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 싶었다. 아마 그런 뜻에서 ‘문화유산을 지키는 독립운동가’라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질문 3] 옛터민속박물관을 증축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국가나 지자체 그 어떤 예산도 받지 않고 사립박물관 증축을 하고 있다. 맨 처음 박물관 전시장을 개관할 때만해도 전시회를 순차적으로 열어 다양한 유물 전시했다. 테마가 있는 다양한 유물을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앞으로 박물관 체험 프로그램을 점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체험 교실을 열어 천연염색, 한지공예, 매듭공예, 규방공예 등 전통문화 체험의 기회를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2018년 12월에 완공 할 계획인데 내부 인테리어와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할 수 있는 체험 장을 꾸미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듯하다.

[질문4] ‘마당엔 모닥불 하늘엔 둥근달’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무슨 뜻인지?

대전에는 광역시지만 국립박물관이 건립되어 있지 않아 참 안타깝다. 바쁘고 치친 사람들이 문화유물을 관람하면서 잠시 쉬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일 년 365일 마당 한 가운 모닥불을 피워두고 초롱과 촛불을 환하게 밝혀둔다. 이곳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다. 또한 야외 전시장에는 동자석 돌절구, 다듬잇돌, 맷돌을 조화롭게 전시해 아이들의 학습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꾸몄으며, 산책로 ‘노루웨이’ 둘레 길을 조성해 청춘남녀 연인들이 만남이 꼭 성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다.

[질문 5] ‘소금단지’ 이야기가 있던데 무슨 의미인지?

아홉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 저는 막내였다. 맏형과 열여덟 살 차이가 났으니 부모님의 사랑이 남달랐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은 가득차고도 흘러넘쳤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유품을 집안 곳곳에서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집안에서 소금단지로 쓰던 물건이 눈에 들어와 어머니께 여쭤보니, 아버지가 신혼 때 어머니께 사다준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간장단지로 쓰다가 나중에는 실금이나 소금단지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금단지를 깨끗하게 씻어 책상에 올려두고 아버지라 생각하며 날마다 바라보았다. 그 때문인지 백자에 마음을 빼앗겼다. 백자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듯한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 계기로 백자, 청자 그리고 민속품까지 시선이 갔다. 어린 나이에 돈만 생기면 고물상 아저씨를 찾아가 작은 소품들과 바꿨다. 그 계기가 되어 오늘날의 ‘옛터민속박물관’이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의 소금단지는 알고 보니 일본 사케 통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유물보다 나는 최고로 친다. 물건을 값이 어떠하든, 나에게 소금단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질문 6] ‘경제에 인문학을 넣다’ 또는 ‘인문학적인 밤 문화 조성’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앞으로는 모든 경제에 인문학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민속막물관을 운영하면서 유물 도록 10권과 유물전시를 열고 있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토대로 도록을 만들었는데 ‘조선 여인들의 화려한 초청’, ‘입술에 대는 토기’, ‘조선여인, 나빌레라’, ‘분청의 향기, 그 분으로 치장한 멋’, ‘조선여인의 은장도 그 순결함’, ‘조선장인의 유감(有感) 소목장’, ‘등불, 조선의 혼을 밝히다’, ‘조선여인들의 화려한 외출’, ‘토기에서 도자기로의 향연’, ‘조선선비의 애(愛) 연적’ 이렇게 열 권이 제작되었다. 앞으로도 유물에 대한 사랑,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