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붙은 존재(存在)는 시(時)와 공(空)을 떠나서 존립(存立)하기가 어려운 것이 실상세계(實相世界)의 철리(哲理)요 이법(理法)”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 불립문자 교외별전(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하가섭(摩訶訶迦葉) 존자(尊者)에게 부촉(付囑)하신 것은 우리 불교의 금강보검(金剛寶劍)의 진면목(眞面目)을 시현(示顯)하신 것은 더없는 본분사(本分事)입니다. 서건사칠 동토이삼(西乾四七 東土二三)의 천축(天竺) 이십팔대(二十八代)와 동방(東邦) 육대(六代)에 이르러 황면노사(黃面老師)의 금구성언(金口聖言)과 육조돈법(六祖頓法)은 해동(海東)의 태고(太古)에 미쳐 잠시도 멈춘 바 없이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태고종문(太古宗門)의 제일(第一)의 종승(宗乘)으로 현금(現今)에 미치고 있습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 변함없이 전승(傳承)되어 종문적자(宗門嫡子)들의 정통법맥(正統法脈)은 조계산(曹溪山) 선불장(選佛場)에서 꽃을 피우리라 확신(確信)합니다.

오늘은 무술년(戊戌年)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입니다. 순간순간이 무금(無今)이요 찰라찰라가 영원(永遠)이지만, 어리석은 범부중생(凡夫重生)은 삼세(三世)를 분간하고 동서남북(東西南北)을 구분 짓는 오류(誤謬)를 범합니다. 그렇지만 생명이 붙은 존재(存在)는 시(時)와 공(空)을 떠나서 존립(存立)하기가 어려운 것이 실상세계(實相世界)의 철리(哲理)요 이법(理法)입니다.

산문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에 마음이 맑아지고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면 새들도 잠을 자려고 소리를 멈춥니다. 우리 불교는 본래 이런 도리를 중생들에게 알려주고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의 깊은 밀지(密旨)를 전해주려는 것이 전부인데, 도성(都城)에서 사자후(獅子吼) 대신 괴성((怪聲)으로 민심(民心)을 어지럽게 하고 사회(社會)를 시끄럽게 한다면 본분납자(本分衲子)들의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봅니다.

1만 태고종도(太古宗徒)는 4천 사암(寺庵)에서 해제(解制) 대신 참회정진(懺悔精進)으로 시은(施恩)에 보답(報答)하는 각고면려(刻苦勉勵)의 정근(正勤)으로 불국정토(佛國淨土) 구현을 위하여 염불(念佛)소리 그치지 않기를 바라노라!

오늘 무술년 해제법어는 태고보우원증국사의 시(詩) 한수로서 마치고자 합니다.

산 위엔 뜬 구름이 어이 그리 희고 흰가

산 속엔 맑은 샘이 흐르고 또 흐르네.

흰 구름의 저 형용을 뉘라서 봐서 알까

개었다 비가 왔다 번개 치듯 잘 변하고,

흐르는 샘물소리 뉘라서 들어 알리

천 구비 만 구비 쉬지 않고 흐르누나.

山上白雲白又白 山中流泉滴又滴

誰人解看白雲容 晴雨有時如電擊

誰人解聽此泉聲 千回萬轉不流息

희(噫)라!

혜 초(慧 草) <태고종 종정. 조계산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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