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탐진치 3독을 소멸해가는 과정

△“한국불교태고종 대구·경북 종무원 ‘열린불교대학’ 학장 지해스님

대구에 있는 기원정사(주지 지해스님)는 북구 매천동 617번지에 위치해 있다. 대전에서 새벽길을 달려 도착하니 아침 10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대구에 도착해 반대편으로 갔다가 30여분을 되돌아왔다. 그렇게 돌고 돌아 도착한 기원정사는 아담하고 정갈한 사찰이었다. 이곳 주지 지해스님은 경내의 모습처럼 단정한 미소를 가진 분이었다. 선하고 맑은 눈빛이었다. 인사를 하고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스님은 여고시절 역사 선생님 같은 모습이었다. 딱 부러지게 불교에 관한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말해줬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들려주니 불교에 관해 문외한이라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겠다 싶을 만큼 설명이 쉽고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어디서 강의 나가지 않느냐 물으니 “한국불교태고종 대구·경북 종무원 ‘열린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년 과정으로 진행되는 불교 공부

열린불교대학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서 4시 스님, 전법사, 교임 (절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 불자 등에게 경전(금강경)과 불교에 관한 전반적 기초교리를 전하고 있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인동 가산로 1045번에 위치한 대구경북교구 종무원 ‘열린불교대학’에서는 40여명이 2년 과정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신입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054)975-4339로 문의하면 된다.

△과거 전생 인연에 의한 자연스런 출가

지해스님은(63)은 1981년 28세 되던 해에 출가했다. 불법과의 인연이 닿아 자연스럽게 출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에 의한 것. 그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절에 다니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가 전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스님은 “속가와 출가의 길은 다르다”며 “출가는 부처님 말씀대로 정신적 자유인으로 걸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속에서 탐진치는 3독”이라며 “이 3독을 소멸하는 것이 수행이고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 고타마 싯타르타가 탐진치를 소멸해가는 과정을 따라가겠다는 의지

절에 가면 무조건 대웅전 불상 앞에 삼배를 올린다. 그것은 절의 예법이라 생각해 왔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스님은 분명한 어조로 “우리가 불상을 보고 절하는 것은 고타마 싯타르타가 탐진치를 소멸해가는 과정을 따라가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또한 “신도들이 절에 왔다가 나갈 때는 무언가를 얻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재불보살 중생들 성불하도록 이끄는 것”이 스님으로서 해야 할 책무라고 했다.

 

△막연한 기도는 의미 없어

지해스님은 “부처님을 따르는 자들은 믿음을 가지고 보살행을 실천해야 한다. 믿음과 이해 중 한쪽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대상을 알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비로자나불 주불에 관한 원력을 알아야 한다. 막연한 기도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학위논문-불교의 사회적 실천 위해 적극적 노력

지해스님은 2012년도 ‘근대 한국불교의 자강운동(1905~1910년경 경제적·문화적 실력양성에 의한 국권회복을 표방했던 운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불교정책에 맞서 전개된 불교의 자강운동과 그 운동이 오늘날 불교계에 미친 영향과 현재적인 의미를 논문으로 작성·발표 한 것. 스님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상황에서도 한국불교계는 좌절하지 않았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하고 민족자존의 의식 고취와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며 “이러한 한국불교계의 자강운동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민족정체성을 고양시킴으로서 사회계몽과 참여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결론지었다./도복희기자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