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필 때

화염에 댄 자국이었다

입술이 지나가자 어제가 멈추었다

제멋대로 네가 폈고

제멋대로 금강은 범람했다

수종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수면 밖으로 튀어 오르는 밤

붉은 꽃잎으로 달빛을 가리자

그늘이 넓어졌다

서로에게 숨어서 놀았다

가슴에 얼굴을 묻은 우리는

섞인 체취로 반반씩 닮아갔다

식물처럼 고요해졌다

붉게 도드라진 꽃잎이 흰 마당으로 쏟아지는 동안
 

비밀의 집

너를 만나러 가는 일요일은 너만 있어

텅 빈 세상에 하나의 이름만 그곳에 있어

가로수가 비를 맞는 오전을 걸어가면

비둘기가 둥지를 튼 비밀의 집 한 채가 숨어 있지

멀리 식장산을 향한 천변 길

새벽 숲 돌아가는 뱀의 등처럼 굽어 있어

서쪽 창으로 몸을 고여 놓고

겹겹으로 숨겨둔 서로의 물갈퀴를 더듬지

눈길 닿은 산과 바람과 호두나무를 적시는

구름의 색깔들

칡넝쿨처럼 얽혀드는 마음이 무성하네 일요일에는

배꼽에 돋아나는 새순이 눈 뜰 때마다

오선지 밖의 음계는 거칠어지지

너를 만나러 가는 일요일은 오직 너만 있어

그곳으로 달려가는 일요일만 있어
 

[저자소개]

< 도복희 시인 >

아름다운 자연이 풍광처럼 펼쳐진 부여에서 감성 풍부한 유년기를 보내고 자연스럽게 충남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2011년 문학사상에 「그녀의 사막」으로 등단한 후 여러 문학지에 그녀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발표했다.

2016년 ‘전국계간지 우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래도 부족한 것을 느껴, 2017년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 바람같이 살고 싶다”는 시인은 오늘도 히말라야 네팔로 떠나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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