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미소 흘러 온화한 인상 풍겨’

 

용봉사 마애불과 더불어 싹트기 시작한 홍성지역의 불교문화는 고려 초부터 홍복원부인과 홍규의 지원에 힘입어 크게 발전하였다.

보물 제355호로 지정된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홍성지역의 불교문화를 꽃피워 고려 말로 이어져 보우 선사를 낳고, 왕사 및 국사에 오른 보우 선사는 홍주가 목으로 승격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홍성읍 소재지에서 예산군 덕산면으로 향하는 609번 지방도를 따라 약 5㎞에 위치한 용봉산에 위치해 있다.

용봉사가 있는 계곡을 따라 산을 거침없이 오르다보면, 용봉사 일주문이 있고, 그리고 높이 4m의 거대한 마애불과 마주한다.

마애불은 산의 정상부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다가 갑자기 우뚝 솟은 경사진 바위 면에 새겨있다.

먼저, 불상을 새길 공간(불감 佛龕)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얼굴 모습은 전체적으로 동글고 통통하게 표현하였다.

머리는 민머리의 소발(素髮: 머리카락의 표현이 없는 양식)이며, 지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 위에 또 하나의 머리가 더 얹혀있는 것 같은 모습의 육계가 높다. 이마 한가운데에 조그만 홈을 파듯 새겨진 백호(白毫)는 매우 뚜렷하다.

한편 눈썹은 반원형으로 가운데 부분은 깊게 조각하고 끝으로 갈수록 얕게 표현하여 부드럽게 처리하였고, 눈 역시 가늘게 뜬 눈이지만 초리를 살짝 내리고 있어 위엄함 보다는 인자함을 보여준다.

코와 입은 다른 표현에 비하여 작은 편인데 코는 오뚝하며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턱은 얼굴이 통통함을 보여주듯 살이 겹친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귀는 백호의 높이에서부터 거의 어깨까지 내려오도록 길게 표현하였다.

목은 신체에 비하여 매우 짧지만 삼도(三道)의 표현은 뚜렷하다. 신체는 얼굴에 비하여 다소 왜소한 느낌을 주지만 근육은 잘 잡혔다. 불상의 손 모습을 표현한 수인(手印)은 시무외인(손바닥을 들어 밖으로 향하도록 새긴 것) 만을 맺고 있는데, 오른팔은 자연스럽게 내려 다리에 붙이고, 왼팔은 들어 가슴 위에 올리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홍성지역의 다른 불상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지역만의 특징적인 조각수법으로 이해된다.

전체적으로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얼굴의 인상이 풍부하고 원만할 뿐만 아니라 신체의 비례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의 형식적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규모가 커졌고, 상체 부분은 깊게 조각하면서도 하체부분은 선각으로 얕게 조각한 점, 간략하면서 도식화된 옷 주름, 미숙한 조각수법 등의 세부적 부분들을 고려할 때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은 용봉사 마애여래입상과 함께 수인(手印) 및 전체적인 특징에서 이후에 조성되는 홍성지역의 불상 조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연(成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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