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은 바로 세계 평화가 오는 것

대한제국이 1889년 2월 개관한 한국최초 주미대한제국공사관건물도 방문

편백운 총무원장스님과 이현영 종협회장 및 참가자들이 워싱톤 D.C.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관에서 독경하고 있다.

편백운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스님은 뉴욕 유엔본부 ‘평화 세미나’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6월17일(현지시각) 워싱톤 D.C.로 이동하여 제일 먼저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관을 참배하고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혼과 넋을 위로하는 독경과 영가축원을 올려 왕생극락을 기원했다.

링컨 기념관 맞은편에 위치한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관 건립과 설계는 1986년 4월 20일 미국의회에서 승인되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위원회와 미국 전쟁기념비위원회의 자문을 받아서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해서 미국인들과 세계에서 온 시민들이 참배하면서, 전쟁 없는 평화를 갈구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남북정상 간의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산 간의 ‘싱가포르 합의문’에 따라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은 바로 세계 평화가 오는 것”이라면서 참배한 일행들과 함께 남북통일에 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 없는 세계평화를 기원했다.

이곳 기념 연못에 새겨진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통계수치에 의하면, 미국인은 5만4천246명이 사망했으며, 유엔참전군 사망은 6십2만8천8백 33명이다. 실종은 미군이 8천 1백 77명, 유엔참전군이 4십7만 2백67명이며, 부상은 미군이 10만 3천 284명이며, 유엔참전군은 1백만 6만 4천 4백 53명이다. 포로는 미군이 7천 140명, 유엔참전군이 9만 2천 970명이라고 새겨져 있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1889년 2월 개관한 조선왕조 한국최초 주미대한제국공사관건물도 방문했다.

대한제국은 1889년 2월 이 건물에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개설했으나,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1897~1910)의 외교권을 강탈하기 전까지 16년간 이 건물은 활발한 외교활동의 중심무대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1910년 8월 국권을 앗아간 일제는 마침내 이 건물도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해 되팔고 말았다는 비극적인 사연이다.

1945년 8월 광복을 되찾았지만, 굴욕적으로 빼앗긴 이 건물의 소유권을 되찾지는 못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재미 한인사회를 시작으로 이 건물을 되찾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이어 언론계(중앙일보기자 박보균), 문화계(헤리티지포럼 이배용)등의 많은 노력이 뒤따랐다고 한다.

마침내 2012년 10월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재매입에 성공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을 되찾아 올 수 있었으며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한국과 미국의 역사를 함께 공유한 뜻깊은 장소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

고종의 자강외교로부터 한미관계의 싹이 튼 ‘한미우호의 요람’이자,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던 창구역할도 하였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재미 한인들이 국권회복의 결의를 고취시키던 독립의 상징이었다. 현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워싱턴 D.C.의 19세기 외교공관 중 원형을 간직한 유일한 건물로서 한미 양국 모두에게 역사적 가치가 높여주고 있는 명소로서 워싱톤 D.C.를 찾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취임 후 3번째 미국 방문길에 이곳에 들려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이 건물이 잘 보존되어 많은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방문하여 지나간 역사의 교훈이 되도록 하라고 관계자들에게 격려한 바 있다.

편백운 총무원장 스님은 이번 방미는 (사) 한국종교협의회의 각 종단 소속 대표자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태고종 총무원에서는 법정 재경부장(종정예경실장)스님이 수행하고, 주필 원응스님이 동행.취재하고 있다.

총무원장스님 일행은 백악관 미국국회의사당 자연사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6월18일 오전 10시(현지시각) 워싱톤 타임즈사를 방문, 관계자들과 ‘한반도의 평화와 종교인의 역할’에 대한 간담회를 갖고 뉴욕을 경유, 귀국 길에 오르게 된다.

워싱톤 D.C.=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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