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사랑이 남다른 시인이 있어 대전시 대흥동 골목을 누볐다. 대전역을 빠져나와 원도심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으능정이 네거리를 지나, 아신극장과 마당 소극장 스쳐 지나갔다. 몇 발자국 더 조금 걷자, 회색 보도블록이 의자사랑이 남다른 전병국 시인의 집 방향으로 촘촘히 나 있었다. 사각 딱지 모양의 보도블록들이 끝나는 지점, 의자들이 빼곡히 들어찬 전병국 시인의 가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양각색의 의자들이 제멋대로 포개져있는 ‘예하’ 그곳에 있는 의자들 모두 ‘쉼’ 이거나 ‘멈춤’의 자세들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누군가를 기다는 쇼윈도 속 의자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는지 졸고 있었다.

 

대흥동 가구 거리에는

아침이면 문을 열고

의자와 책장을 진열해 놓는

거리가 있다

계절에 상관이 없는

가구들이 일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시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세상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문을 열면 동화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딸아이 입학선물로 책장을 사러 오는 사람들

새로운 신혼집에 서랍장을 샀던 사람들

직장생활 시작하며 식탁을 사러 왔던 사람들

대흥동 가구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계절에 상관없이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진다.
 

-간판 없는 가구 골목-전문
 

전병국 시인은 대흥동에 터 잡은 지가 20여년이 흘렀다고 했다.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 서울이 고향인 전병국 시인의 꿈은 날마다 서울과 대전을 넘나들고 있었다.
 

여백으로 채워야만 하는

사랑의 추억이야

시간 속에 묻힐 수 있다지만

울음으로 다스려진 마음의 상처는

삶의 긴 터널에서

힘들 때 뒤돌아보면

달려오는 그리움

길게 머리내린 여인의 뒷모습

흑백 사진으로 남아

자화상이 되어 간다.
 

-시간의 흔적- 전문
 

전병국 시인이 터 잡고 있는 대흥동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와 ‘인쇄골목’이 있으며, 인근에 ‘한복의 거리’와 ‘전통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더구나 소극장이 몇 군데 있어서 연극 공연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그런 주위 풍경 때문이었는지 전병국 시인은 원도심 활성화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년 전부터는 예술가들이 몇 명이 ‘자유세상’이라는 연극단체도 꾸렸다.

해우소를 돌아

암자의 기와 위로 보이는

청아한 하늘이

다시 못 올 것 같은 발걸음으로

앞선 사람의 흔적을

하늘 속으로 담아버렸다.

약한 바람에도

풍경소리는

정진하는 스님의

가부좌처럼 고요하다.
 

-하늘 속으로 담아버렸다- 전문
 

시인의 약력을 부탁하자, 대전문인협회 회원, 문학사랑협의회 회원, 극단 자유세상 공동대표라고 수줍게 말한다. 현재는 '수레바퀴' 동인지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2년 후 쯤에는 자신의 시집 한 권쯤은 만들고 싶다는 전병국 시인, 그가 요즘은 잠시 의자에 앉아 ‘쉼 그리고 멈춤’을 하고 있다. 휘달려온 20년, 너무 의자 사랑이 남달랐던지 몸에 적신호가 왔다. 쉼과 멈춤이 필요한 전병국 시인에게 이제 들녘에 뿌려놓은 곡식들을 수확할 날이 곧 올 것을 예상한다.

전병국 시인의 집 ‘예하 藝河’, 그곳에는 전병국 시인보다 더 먼저 저마다의 주인을 기다리는 의자들이 ‘시’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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