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어둠만이 존재하던 고해의 세상에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 오신 날, 모든 이가 빈자일등(貧者一燈)의 한 마음으로 봉축하는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귀한 인연에 감사합니다.

백겁의 세월을 기다려서 만나게 된 부처님의 첫 일성은 하늘 위와 하늘 아래의 모든 생명은 존귀하고 세상이 고통 속에 있으니 마땅히 평안하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2,600여 년 전, 부처님이 우리 곁에 오심으로써 비로소 우리 모두는 날마다의 일상에서 순간에 옷깃을 스치는 찰라의 만남조차 기나 긴 기다림의 결과로 이루어진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전하고자 하신 것은 모든 생명들이 인드라망처럼 얽힌 연기(緣起)의 인연으로 깊이 맺어진 전일적(全一的)인 동체(同體)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삼독의 잡란(雜亂)에 빠져 독선과 아만, 불의와 증오, 대립과 갈등의 마음 지옥을 하루 낮 하루 밤에도 만 번씩 되풀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직은 삼계화택(三界火宅)에 머무는 탓입니다.

잔은 비워질 때라야 비로소 채움의 본래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듯이 우리 마음속의 집착과 탐욕을 비워내고 대화와 배려를 채울 때 우리 안의 불성(佛性)도 함께 차오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오랜 갈등으로 대립하던 남과 북이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은 각자의 주장을 비우고 모든 국민의 염원을 가득 채워서 분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공동체로써 한민족이 함께 번영을 누리는 통일의 시대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마음 깊이 환영합니다.

이제 우리 2천만 불자를 비롯한 한민족 전체는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가지면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없다는 화엄경의 가르침대로 서로를 인정하는 지혜와 배려하는 자비로써 모두가 하나 되는 화엄의 장엄세계(莊嚴世界)를 구현해 나갈 것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조차도 생길 수 없다는 연기(緣起)의 이치를 지금의 상황에 되새겨 상대가 없으면 나 역시도 존재할 수 없다는 공동체대비(共同體大悲)로 하나되는 민족의식을 고취할 때입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 불법의 요체(要諦)를 받들고 중생을 위한 이타행(利他行)을 최고의 덕으로 삼는 수행의 주체인 우리 승가부터 삼보의 보배이자 중생의 복전이라는 본연의 자리에 마땅하도록 먼저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백겁의 희유한 인연으로 부처님과 우리가 함께 만난 뜻 깊은 불기2562년 부처님 오신 날에 저마다 소중하게 올린 자비의 밝은 등으로 모든 이가 스스로 행복한 저마다의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불기2562년 부처님오신날

한국불교태고종 중앙종회의장 도광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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