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를 ‘원시불교’ ‘근본불교’로 표현하면 잘못
현재의 ‘상좌불교’와 ‘초기불교’를 혼동해서도 안 돼

인도불교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인도불교사는 시대별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인도불교사의 시대구분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약간 다르다.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는 인도불교사를 원시불교, 부파불교, 초기대승불교, 후기대승불교, 밀교로 구분했다. 미즈노 고겐(水野弘元, 1901~2006)은 인도불교사를 원시불교, 부파불교, 초기대승불교(大小乘倂立佛敎), 중기대승불교(大小乘學派佛敎), 후기대승불교(眞言密敎)로 구분했다. 그의 분류는 대승불교를 초기ㆍ중기ㆍ후기로 나누고, 후기대승불교에 밀교를 포함시킨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히라카와 아키라는 후기대승불교와 비밀불교(밀교)를 분리시켜 별도로 다루었다.

이러한 시대구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도불교사의 시대별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편의상 구분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인도에서 초기불교 시대가 끝나고 부파불교 시대가 시작된 것도 아니고, 부파불교 시대가 끝나고 대승불교 시대가 성립된 것도 아니다. 대승불교가 성립한 후에도 부파불교는 성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5세기 초에 인도를 여행한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나 7세기 전반에 인도에 유학한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및 의정(義淨)의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등의 기술을 통해 알 수 있다.

인도에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는 약 1,000년간 서로 논쟁하면서 공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부파불교 시대와 대승불교 시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히라카와 아키라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가 대립하고 있을 때, 대승불교보다 부파불교가 세력이 더 우세했다고 말했다. “특히 의정(義淨, 635~713)이 인도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부파불교)의 구별도 모호해지고 극히 융합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시대부터 밀교가 급격히 성행하게 되었다. 요컨대 대승이나 소승 모두가 밀교화 되었으며, 힌두교의 융성 및 회교도의 인도 침략과 함께 불교는 세력을 잃고 12세기 말엽에 위끄라마쉴라(Vikramaśilā) 사원이 회교도에 의해 소실됨으로써 불교는 인도에서 멸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완전히 멸망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불교는 벵갈 지방에는 존속하고 있었으며, 현재도 동벵갈 지방(지금의 방글라데시)에는 예부터 불교를 신봉해온 사람들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초기불교’ 혹은 ‘원시불교’라는 명칭과 관련된 정의(定義)와 범위(範圍)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이러한 학설들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학자에 따라서 명칭만 다를 뿐 둘 이상의 명칭이 지시하는 영역은 같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명칭에 따라서 그 연구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이다.

전자의 학자들에 따라서 명칭만 다른 경우는 ‘원시불교’와 ‘초기불교’, ‘빨리불교’와 ‘상좌부불교’가 있다. 그리고 의미는 약간 다르지만 ‘근본불교’와 ‘최초기불교’도 명칭은 다르지만 지시하는 영역은 유사하다.

후자의 명칭에 따라서 연구의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근본불교’와 ‘원시불교’ 혹은 ‘최초기불교’와 ‘초기불교’를 구분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원시불교’와 ‘빨리불교’ 혹은 ‘초기불교’와 ‘상좌부불교’를 구분하는 경우이다. 두 가지 모두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관계에 있다. 특히 ‘빨리불교’ 혹은 ‘상좌부불교’의 영역은 ‘원시불교’ 혹은 ‘초기불교’의 자료에 이른바 상좌부의 독특한 교리적 해석이 제시되어 있는 논장이나 주석 문헌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이제 하나하나의 명칭들에 대한 의미를 검토해 보자.

대부분의 학자들은 ‘원시불교(Primitive Buddhism)’ 혹은 ‘초기불교(Early Buddhism)’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명칭은 서로 다르더라도 내용적으로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두 명칭 가운데 굳이 ‘원시불교’라는 명칭의 사용을 반대하고, ‘초기불교’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예전에는 ‘원시불교’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했으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 ‘초기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원시불교’라고 하면 미발달된 원시적인 불교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어 primitive는 ①원시의, 원시시대의, 태고의, ②원시적인, 소박한, 미발달의, 유치한, ③야만의, ④본원적인, 근본의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가치중립적인 ‘초기불교(初期佛敎)’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초기불교의 범위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서로 다르다. 현재 초기불교의 범위로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붓다의 성도(成道)에서 시작하여 붓다가 입멸(入滅)한 후 상좌부와 대중부 두 부파로 분열되기까지의 불교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설이다. 이것은 인도불교사의 시대적 구분에서 볼 때 부파불교로 이행하기까지의 불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가 성립하여 그 초기교단에서 아직 분파가 생겨나지 않은 시대의 불교를 ‘초기불교’라고 보는 것이다.

인도의 빨라 제국(Pala Empire, 750~1200) 시대, 위끄라마쉴라(Vikramaśilā)와 날란다(Nalanda)는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었다. 위끄라마쉴라는 다르마빨라(Dharmapala) 왕이 783년부터 820년까지 설립한 사원이었는데, 1,200년경에 회교도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 사원의 파괴와 함께 인도불교도 쇠망하고 말았다.

미즈노 고겐은 초기불교 시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붓다가 불교를 열어 그의 전도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불멸후(佛滅後) 100년 내지 200년 사이에 부파가 분열될 때까지의 2백~ 3백년간을 말한다. 그것은 붓다에서부터 아쇼카 왕 때까지이다. 남전(南傳)에 따라 아쇼카 왕의 출세를 불멸 200여년 후라고 한다면 초기불교 시대는 250년간이 된다.

북전(北傳)에 따라 아쇼카 왕의 출세를 불멸 100여년 후라고 한다면 초기불교 시대는 150년간이 된다. 어쨌든 부파불교가 분립하기까지 초기불교가 석존 이래 동일한 보조를 취해 온 것을 초기불교라고 부른다.”고 했다. 요컨대 초기불교 시대는 시기적으로는 붓다 생존 시대부터 입멸 후 100년, 부파의 근본분열이 일어나기까지의 약 150년에서 250년 사이의 불교를 일컫는다.

그러나 부파분열의 연대를 언제쯤으로 보는가. 그리고 아쇼카 왕(B.C. 268~232년경 재위)과의 관계에 따라 초기불교의 시기가 달라진다. 부파분열의 연대를 붓다 입멸 후 100년(또는 110년)으로 보는 것은 거의 모든 전승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과 아쇼카 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승에 따라 크게 다르다. 즉 북전에 의하면 아쇼카 왕의 즉위를 불멸 100년(혹은 116년, 일설에는 160년)이라 하고, 부파분열은 아쇼카 왕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남전에 의하면 아쇼카 왕의 즉위는 불멸 218년이지만 부파분열은 불멸 100년 칼라 아쇼카(Kāla Aśoka, 싸이슈나가 왕조 제2대 왕)의 치세에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에 아쇼카 왕 시대는 이미 부파분열 후 100년 정도 지난 것이 된다. 즉 북전과 남전 사이에는 약 100년의 차이가 있다. 어쨌든 초기불교의 범위는 붓다의 재세 시대로부터 부파분열에 이르기까지의 불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초기불교의 범위에 해당하는 시기를 다시 ‘근본불교(Fundamental Buddhism)’와 ‘초기불교(Early Buddhism)’ , 둘로 나누는 학설도 있다. 근본불교라는 말은 아네자키 마사하루(姉崎正治)가 그의 저서 『근본불교(根本佛敎)』(1910)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 후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도 넓은 의미에서 초기불교를 근본불교와 좁은 의미의 초기불교로 구분했다. 즉 붓다와 그 직제자가 생존하여 활동하던 시기까지를 ‘근본불교’라 하고, 그 이후부터 근본분열이 일어나기 직전인 아쇼카 왕 즉위까지를 좁은 의미에서의 ‘초기불교’라고 정의했다. 우이 하쿠주의 설은 아카누마 지젠(赤沼智善), 니시 기유(西義雄) 등에게 이어졌다. 특히 아네자키의 제자인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는 ‘원시’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근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 이유는 ‘근본’ 또는 ‘뿌리’를 의미하는 빨리어의 물라(mūla)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밖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원시불교’ 혹은 ‘초기불교’라고만 부르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초기불교를 근본불교와 좁은 의미의 초기불교로 나누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문헌은 모두 부파불교에서 전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불교의 특징을 가려내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근본불교’라는 명칭은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학문적인 용어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근본불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불교의 성전에서도 근본불교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근본불교는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객관적인 증거에 토대를 두고 있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한편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도 우이 하쿠주가 말하는 ‘근본불교’와 비슷한 개념으로 ‘최초기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현존 문헌에는 최초기불교의 특징에서 벗어난 것이 부파불교 교단에 의해 증광(增廣)된 부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이 하쿠주가 말하는 ‘근본불교’를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빨리불교(Pāli Buddhism)’라는 명칭은 빨리 삼장 및 기타 빨리 문헌에 의해 알려진 불교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남방 상좌부불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른바 스리랑카ㆍ미얀마ㆍ태국ㆍ캄보디아ㆍ라오스 등의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전해져온 불교를 말한다. 상좌부불교의 전적(典籍)은 빨리어로 기록된 문헌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빨리불교’라고 하면 부파불교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으면서 가장 정통적이라고 주장해온 상좌부불교와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빨리불교와 상좌부불교 내지는 남방 상좌부불교는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한편 북전에서는 초기불교의 문헌이 한역 아함경과 여러 부파의 율장이기 때문에 ‘초기불교’라는 의미로 ‘아함불교(阿含佛敎)’라는 말도 사용되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현재의 ‘상좌불교’와 ‘초기불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상좌불교는 전래 이후 그 나라 고유의 민간신앙과 습합된 부분도 있고, 후대에 성립된 다른 부파의 사상과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많이 포함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상좌불교는 원래의 불교, 즉 붓다 시대의 불교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좌불교를 리차드 곰브리치(Richard F. Gombrich)는 ‘변모한 불교(Buddhism Transformed)’라고 표현했다. 그는 현재의 상좌불교는 ‘경전의 불교(Textual Buddhism)’과 ‘행동의 불교(Behavioral Buddhism)’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성스님 <철학박사 ㆍ 팔리문헌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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