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혜철입니다.

세계 최대 수월관음도 입상 괘불탱화를 그리고 계시는 지산스님을 모시고 힐링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지산스님은 삼화불교대학 불교미술학과를 졸업하시고 불교 미술의 거장 일당 김태신 스님의 사사를 받으셨으며, 한중미술교류전, 세계평화교류전, 국제예술문화교류협회전 등 많은 전시회를 통해서 한국불교미술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계신 분입니다.

1, 먼저 지산 스님께서 출가를 하신 계기부터 여쭤보겠습니다.

네 소승은 1993년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 전에는 부처님과 연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으나,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니 부처님 인연법에 따라 출가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출가 전에는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배도 타보고 포장마차도 해보고 농사도 지어보고~~ 나름 운동도 좀 했지요.

건강한 체력은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한참 때는 공중에서 두 바퀴 돌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땅에 내려올 정도로 몸이 날렵했습니다. 요즘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출가 전에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부터 꿈만 꾸면 관음보살님이 나타나시는 거예요. 당시에는 그분이 관음보살님 인줄도 몰랐어요. 불가에 귀의하기 전 일이니까! 저는 그분이 천사님인 줄 알았습니다.

잠을 자도 눈을 떠도 그분이 보여 제정신이 아니었지요. 정말 미칠 지경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출가하신 형님께 상의를 했습니다. 저희 집에 큰형님이 당시 출가를 하셔서 스님이셨거든요.

말씀을 들으신 스님이 저에게 출가를 권했습니다. 그 후로 바로 출가를 결심한 것이지요.

2, 지산스님께서는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하셨는데, 그림을 그리는 화승으로 살아오는 동안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제 나이 32살에 출가를 했는데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사회에서 32년을 살고 행자를 시작했는데 외워야하는 경전도 많고 지켜야하는 계율도 많아 정말 힘들었지요!

그때마다 저를 잡아준 건 지금 남해 성명사에 계시는 가산스님 이셨습니다.

‘사람이 한 번 결심하고 뭘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장을 봐야지 중간에 포기하면 되겠나?’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기도 생기고 성질도 나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수행에 정진했습니다. 그러다 법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탱화를 보았는데 순간 전기에 감전된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출가 전 꿈에 나타나셨던 그분이 관음보살님이셨던 것도 그때 처음 알았지요.

마치 제가 전생에 탱화를 그렸나? 하는 느낌!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소승은 원래 그림을 아예 못 그렸어요. 붓을 잡아 본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꿈에서 제가 자꾸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그때는 제가 무얼 그리는 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세음보살님 이셨지요.

법어사 말사에서 출가 후 행자생활을 하며 꿈에 그렸던 관세음보살님을 그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삼화불교대학에서 불교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화승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에는 고려불화의 아름답고 섬세한 매력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러다 일당 김태신 스님을 만나 사사를 받았지요.

일당 김태신 스님은 한국 최초의 신여성 중 한분으로 비구니 일엽스님의 아드님입니다. 도쿄제국미술학교 졸업 후 고야산불교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했고, 독보적 색채 화가이며, 일본의 3대 미술상을 휩쓸고 세계 각국에서 300여 차례의 전시회를 개최한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그 스님께 2년의 사사를 받고 같은 절에서 모시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으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화가는 항상 붓을 잡고 살아라” 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후부터 고려불화만 그리며 한길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3. 현재 30m 괘불탱화를 제작하고 계신다는 데 설명 좀 해주시지요?

네, 지금 그리고 있는 수월관음도는 높이가 30m 넓이가 8m나 되는 입상 괘불탱화로는 세계에서 최대입니다. 완성 후 기네스북 등재도 추진하고 있고요. 아파트 높이로 따지면 10층 정도 되니까 정말 크고 웅장한 대작이지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불교적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려시대 괘불탱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도성인 개경에만도 70여개의 사찰에서 불화를 비롯해 각종 불교의식에 사용된 상당수의 불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그런 고려불화가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중기의 임진왜란을 적으면서 수탈과 약탈을 당해 대부분 일본으로 넘어갔어요.

현재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140여점 남아 있는 걸로 알고있지만 그 대부분이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는 몇 점 남아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나마 남아있는 괘불탱화도 대부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있어 보관하고 관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 각종 행사나 기원제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대부분의 고찰에서는 일 년에 한 두 번 괘불제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공개하는 것이 전부이지요.

어느 날 공주에 있는 갑사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 갔는데 괘불탱화를 거기서 처음 보았습니다. 보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마치 전생에 제가 괘불탱화를 한번쯤 그려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괘불탱화에 빠졌습니다. ‘이걸 꼭 그려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4, 그럼 지금 제작하고 계신 괘불탱화는 언제부터 그리신 겁니까? 워낙 큰 대작이라 마음먹기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2015년 여름인가? 나라 안팎으로 심란한 일이 많았어요. 중동에서 발생한 전염병인 메르스 때문에 사람도 죽고 대표적 불교국가인 네팔에서 대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나라와 중생을 위해 불화를 그렸던 고려시대의 화승의 마음으로 나라의 평화와 중생의 안녕을 기원해 보자! 이왕 그리는 거 세계에서 제일 크고 웅장한 괘불을 그려보자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규모가 큰 대작을 작업하는 만큼 구도를 맞추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렸다 지웠다를 수 없이 반복했고 지우개 쓴 것만도 수백 개는 될 것 같습니다.

한여름에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해야 할 때는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워낙 큰 그림이다 보니 종이를 폈다 접었다 하는 일도 보통일은 아니었습니다.

2년여 작업 끝에 현재 수월관음입상 괘불탱화의 밑그림인 초본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는 배접작업과 채색작업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남아있는 배접과 채색작업에 약 8개월에서 일 년 정도의 제작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인데 고려불화의 특성상 진금이나 석분 등 천연안료를 사용해 채색을 해야 하고 배접작업 역시 전통의 기법이나 고증에 따라 장인들이 진행하여야 해서 그 비용이나 노력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5, 지금까지의 작업은 지산스님 혼자서 해오셨지만 앞으로 남겨진 작업들은 참여와 도움이 필요하시겠군요.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스님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일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고 계시는 분들이 있으신지요?

“꼭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제 의지가 뚜렷하니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고 있습니다. 제 이런 어려움을 아시고 한 불교 TV에서는 다큐로 제작하자는 제안도 주시고 또 어떤분은 유네스코 후원사업 지정을 알아봐 주신다며 동분서주 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괘불탱화는 수백 년, 때에 따라서 천년도 보존 됩니다. 차후 국보로 보물로 지정되어 대를 이어 관리 되지요. 그래서 괘불제작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신 분들의 화기명을 탱화에 남기는 겁니다.

화기명이란 괘불의 하단이나 뒷면에 진금으로 시주금 후원자들의 이름을 세기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괘불탱화의 화기명은 한묵유희 분야의 대한 명인으로 지정되신 서예가 청악 이홍화 선생님이 직접 진금으로 기록해 주실 예정입니다.

6, 부처님을 위한 공덕의 기록이 천년을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 최대의 괘불탱화를 ‘수월관음도 입상’으로 제작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일반적으로는 보타낙가산의 연못 바위에 앉아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 관음보살님의 모습을 그린 수월관음도 좌상이 대부분입니다. 현재 일본을 비롯한 미국, 유럽 등에 40여점이 현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보관되어있는 수월관음도는 몇 점 되지도 않을뿐더러 박물관이나 수장고에 관리되고 있어 일반인들이 마주하기 힘들어요.

사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관세음보살화의 대부분이 수월관음도에 속하지요. 관음신앙이 성행했던 불교국가 고려의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수월관음도는 그 제작기법이나 재료 채색기법에 있어서 여타의 그림과는 견줄 수 없는 화려함과 섬세함을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뒤에 있는 이 그림 역시 꿈에 관세음보살님과 사천왕이 나타나 그린 그림을 병풍으로 만들었어요.

7, 지산스님의 병풍 작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입니다. 지금부터는 지산 스님께서 달마 그림을 그리는 시연을 해 주시겠습니다. 달마를 그리시면서 그림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소승이 그리는 달마상의 모습은 우선 눈과 귀를 크게 표현하는데, 이는 ‘큰 눈을 통해 세상을 크게 보고, 큰 귀를 통해 많이 들어, 당당한 체험의 주인공으로 살아라’ 하는 의미지요.

예로부터 달마도는 집안의 액운을 막아주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죠.

행운과 소망을 기원해서 이 그림을 혜철 스님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8, 지산스님과의 좋은 추억으로 잘 간직 하겠습니다.

오늘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산스님의 괘불탱화가 부처님의 가호로 잘 마무리되길 여러 사대부중들과 시청자들께서 함께 응원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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