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가야불교 사찰 밀양 부은사(父恩寺)
태고종, 가야불교 사찰 밀양 부은사(父恩寺)
  • 이경숙
  • 승인 2018.02.0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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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의 유산이 더 훼손되고 멸실되기 전에 발굴과 복원 시작됐으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가야사 복원사업’ 이다. 경남·경북·전북·부산 등 가야문화권 4개 광역지자체는 총 2조9376억원을 들여 415건의 가야사 복원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강조가 촉매제가 되어 가야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가야사와 가야불교사의 재조명’ 학술대회, 11월18일 부산대 인덕관에서 열린 ‘가야불교문화 재조명’등 가야불교사 관련 세미나도 연이어 열리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소외돼 왔던 가야불교가 새롭게 조명을 받는 가운데 가야불교의 유물이 남아있는 태고종단 유일의 가야불교 사찰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 부은사(부은암, 부암)를 재조명하고 발굴과 보수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열린 ‘가야사와 가야불교사의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김경수 의원(더불어민주당, 김해시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봉하마을을 소개하면서 자암, 부은암(부은사), 모은암 등 가야불교에 얽힌 사찰 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직 역사로서 인정받지 못한 부분은 있지만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시 공부를 위해 과거 부은사에 머문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만큼 가야불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부은사는 임진왜란 때 전란으로 소실되어 폐사지로 있다가 철종 11년(1860년)에 동학사 학송스님이 옛 터를 찾아 초막법당을 지었고, 1960년에는 농산화상이 아래 사지에 극락전과 요사채 전각 등을 복원하고 1981년 자비보탑을 조성하였다.

부은사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불좌상은, 1930년 사지에서 주원택 거사가 약초를 채취하다가 발견했다. 조선 숙종 14년(1688년) 경주 옥석으로 조성되었고 2009년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 476호로 지정됐다.

1992년 성봉스님이 중간지점까지 차도를 개설하였고 1996년 태우스님(현 태고종 원로의원, 밀양불교사암연합회장)이 부은암 주지로 부임하면서 중창불사 원력을 세우고 천일기도를 여섯 번 하면서 신도들의 지극한 신심을 모아 옛 부은암 소유 임야 10만 7천평을 매입, 부은암에 귀속시켜 중창불사의 기반을 조성했다. 현 사지까지 차도개설, 천불보전, 범종각, 영산전, 삼성각, 용왕당, 요사채, 화장실 및 범종(1천관)을 조성하여 ‘통천범종(通天梵鐘)’으로 명명했다.

여섯 번째 1000일 기도시에는 경내에 약사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시왕,포대화상 등을 돌로 만들어 세워 옛 가람을 재현하는 중창불사 회향과 6천일기도를 원만 회향했다. 태우스님은 “삼보와 사존과 부모님의 은혜를 받들어 정법(正法)에 효순(孝順)하는 진리의 법문을 담고 불심(佛心)과 효심(孝心)이 만나는,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옛 가락국 전통사찰의 면모를 명실공히 갖춘 것 같아 불보살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태우스님은 “이렇게 수십년동안 정성을 모아 2000년 가야고찰을 복원해 놓았는데 길이 좁아 신도들이 부은사를 참배하고 싶어도 버스가 올라오지 못해 참배가 어려워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버스가 절 가까이 올라올 수 있도록 절로 올라오는 길이 확장되기를 학수고대했다.

태우스님은, 부은사가 김수로왕의 아들인 거등왕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오지만 김수로왕이 직접 창건한 것 같다고 추정한다. 김해 모은암, 자은암과 더불어 가락의 3대 원찰(願刹)이고, 서림사·칠불암과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성지이며 또 효(孝)사상을 전파하는 보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은사에는 인도 시바신을 상징하는 맷돌모양의 ‘요니’라는 석물이 남아 있는데 돌의 재질이 허황후가 인도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파사석탑’과 같다니 부은사의 창건 년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김수로왕이 만어사를 창건할 때 낙성식에 참석하는 스님들이 부암에서 자고 갔다’ ‘신라왕이 만어사 방문시 부암에서 쉬어갔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으며, 부은사가 위치해 있는 안태리는 양수발전소 앞 태봉(胎峰)에 가락국 왕족의 태를 묻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안태리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등 천태산은 가야 왕족의 탯줄을 묻은 영산으로 전해져 온다.

지금도 발굴되어 재조명되길 기다리는 태무덤이 부은사 경내에도 있다. 가야의 고찰이라는 또 하나의 흔적은 부은사 뒤편 커다란 폭포암벽(부암바위)에 새겨진 ‘통천도량(通天道場)’이라는 글자다. 하늘과 통하는 곳이라는 이 글자는 가락고찰의 가야불교에서만 볼 수 있다. 가야시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김해 은하사의 종각 옆 바위에도 ‘신어통천(神魚洞天)’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 부은사 극락전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장방형의 돌무더기 역시 인도불교의 불사리탑 형태를 갖춘 가야사찰의 특징을 보여준다.

역사학계의 정설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고대 불교의 숨결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찰이기에 부은사 회주 태우스님과 주지 지원스님은 조석예불을 드리면서 2000년 역사의 보은도량 부은사가 재조명 되어 가야불교가 연구되고, 유물이 더 훼손되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으로 발굴과 복원이 시작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경내에 남아 있는 지름 약 2미터의 주춧돌이 9개가 있던 절터와 7기의 탑, 동암 서암으로 구성된 대 가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직도 기와와 그릇 조각이 나오는 4곳의 옛 절터 자리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 사지에서는 1980년도에 강희3년(1664년) 제작된 암막새가 발굴되었는데 ‘거등왕·마품·부암(父庵)’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각을 지은 내력과 창건과 시주 관련 내용이 새겨져 있는 귀중한 암막새가 오래전 어떤 김해 향토사학자가 연구한다고 빌려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다행히 암막새를 촬영한 사진이 남아 있지만 주지 지원스님은 하루빨리 이 암막새가 부은사로 되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밀양=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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