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와 칼라 차크라

현대에 이르러서 보드가야 불교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그 중심에 있다. 달라이 라마의 본명은 라모 톤둡(1935년 7월 6일~ )으로 지금의 중국 청해성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 따라서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확정되어 제춘 잠펠 가왕 놉상 텐진 갸초라는 법명을 받았고,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지위에 올랐다. 중국의 테베트 점령으로 1959년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하여 티베트 망명 정부를 세우고 티베트 본토 복원과 귀환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1989년 노벨 평화상과 루스벨트 자유상(1994), 세계안보평화상(1994) 등을 받았다. 인도에서 주석하면서 세계 각국을 방문해서 대통령 수상 종교계 문화계 인사등과 접촉하면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인도에 망명한 후, 1월에는 항상 보드가야에 있는 티베트 사원에 주석하면서 설법회를 열고 있다. 망명 티베트 라마와 티베트인들 그리고 히말라야 산록의 티베트 불교권 나라와 지역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이곳 보드가야로 운집한다. 게다가 서구의 불자들도 1월이면 보드가야를 찾는다. 보드가야는 그야말로 달라이 라마가 화제며, 티베트 불교 이야기하며 티베트 라마승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여기가 티베트인가 할 정도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티베트 불교 이야기를 하려면 한이 없지만, 간단히 말해서 지금 인도는 티베트 불교 전성시대이다. 인도 후기 대승불교가 전적으로 티베트로 옮겨갔다. 대체로 7세기부터 12세기에 이르는 인도불교 전통은 히말라야 고원에 이식되었다. 이를 금강승 즉 밀교라고 한다. 금강승 불교는 힌두교의 의례가 많이 가미되고 힌두적인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전해진 대승불교는 7세기 이전의 인도 대승불교이다. 그러므로 같은 대승불교이지만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대승불교와 티베트의 바즈라야나(금강승) 불교와는 전통이 다르다. 동남아의 상좌부 불교는 인도의 원형불교인 기원전까지의 불교 전통이다.

인도에서 사라진 불교는 지금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그리고 티베트 권에 살아있다. 세계 각 나라로 전파된 불교는 제각각의 옷을 입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드가야에 돌아왔다.                  

보드가야 대탑사원 운영위원회 도르지 사무총장에 의하면 28개 국가의 사원이 보드가야 대탑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보드가야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계절적으로도 날씨가 온화해서 세계 각 국의 불교도들과 일반인들이 찾는다. 이번 1월에는 티베트 불교의 칼라차크라(時輪) 법회가 열려서 히말라야 산록의 라마들과 티베트 부탄 라다크 시킴 등 티베트 불교권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기에다 동남아 대만 일본 중국 한국에서 불자들이 방문해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대탑사원은 초만원을 이뤘다.

보드 가야는 우루벨리라고 알려진 네란자나 강둑에 위치하고 있다. 부처님이 입멸한지 2백년 가량 지나서 인도 亞 대륙을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처음 이곳을 방문하고 아소카 석주를 세우고 사원을 세워서, 비구들이 거처하게 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기원전 563년에 지금의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해서 29세 때 출가하여 6년 후인 35세인 기원전 534년에 대각을 이루고 부처가 되었는데, 정각을 이룬 장소가 바로 이곳 보드가야 네란자나 강둑 보리수 아래서이다. 이 보리수 아래의 장소를 금강보좌(金剛寶座 Vajrashila)라고 한다. 아소카 대왕은 이 보리수를 의지해서 대탑(大塔) 사원을 건립한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다른 장소에서 거의 6년간 고행을 하다가 이곳 보드 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숭고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아서 성도(成道)를 이룬 것이다. 깨달음의 내용은 불교의 교리적이고 철학적인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연기법(緣起法)과 중도(中道),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제(四諦 진리란 뜻의 제로 읽음), 삼법인(三法印)인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나중에 불교교리 발달과 사상의 전개가 심원해졌지만, 당대로서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전지(全知)의 경지로서 깨달은 자로 숭앙(崇仰)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계속>

원응스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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