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청북도교육청 장학사

"앤 드류언에게 /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칼 세이건, <코스모스> 헌사)

30년 전 대학 시절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처음 접했다. 서점에서 사오던 그 날, 우주의 광활함과 유구함, 경이감에 사로잡히며 단숨에 책장을 다 넘겼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빅뱅 우주, 우주 탐험의 역사, 별의 탄생과 죽음, 우주 여행 등에 관한 세부 내용은 별로 기억에 없다. 그러나 책이 안겨준 우주의 신비로운 인상과 마찬가지로 헌사의 강렬함은 그대로 남았다.

칼 세이건은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 끝을 알 수 없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게 된 것을 기뻐한다고 한다. 헌사에 나오는 앤 드류언은 그의 아내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배경에 우주와 영원을 가져다 놓으면 어떨까. 일상생활이 한 없이 덧없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일상생활이 기적 중의 기적이요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존재들은 또 어떨까. 헤아릴 수 없는 불가능과 허무의 심연을 가로질러 겨우 겨우 만나고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나가 존재들,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깊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30년 전에 만났던 <코스모스>란 책은 우주적 관점에서 또 영원한 시간의 관점에서 나 자신을 살펴보게 한 책이었다.

이번 여름에 만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는 <코스모스>와는 다른 차원의 거시적 관점에서 스스로를 내려다 보게 하는 책이었다.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 ‘지혜로운 사람’)의 출현과 지구적 확산에서부터 현대 정보기술과 생명과학까지 종의 역사 전반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른바 ‘빅 히스토리(Big History)’ 저서이다.

동시에 역사를 통하여 ‘인간 존재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 문명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 등의 큰 질문을 던지고,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역사학 등 관련 학문을 동원하여 답을 추구해 나간다.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 종의 역사는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지혁명(우리가 똑똑해진 시기), 농업혁명(자연을 길들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 시기), 과학혁명(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시기)이다.

그는 또 과학혁명의 연속선상(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에서 인간이 이제 자신을 불멸, 행복, 신성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데우스는 신을 뜻함. 따라서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을 의미.)에서 밝히고 있다.

인간 종의 통사이자 미래의 방향을 다루다 보니 두 권의 책이 내용 서술만 1000 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풍부한 내용과 흥미진진한 서술로 인해 읽는 과정은 전혀 지겹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하라리의 책들을 통해, 국가 또는 민족이라는 범위와 그 역사에 참여하는 일원으로 자신을 국한하지 않고, 인간 종의 특징(공시성)과 역사(통시성) 속에서 자신을 조망하고 의미를 찾아보았다는 점에서 나름 보람있는 독서였다.

더 큰 안목,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볼수록 존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깊은 의미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문제 투성이다. 하나하나가 심각하지 않은 것이 없고, 문제마다 복잡다단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때때로 과감하게 문제에서 빠져나와 거시적으로 내려다 보는 지혜와 배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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