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청북도교육청 장학사

최근 교육부가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정책을 폐기하기로 했다. 지난 9일 교육부 교과서 정책과는 “지난해 말 현장 적합성 검토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해 보니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책 결정은 더 일찍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7일 ‘교과용 도서 개발을 위한 편수자료(편수지침)’를 누리집에 올렸는데, 교과서에 실을 수 있는 교육용 기초한자로 중‧고교용 1800자만 소개했다. 교과서에 한자를 표기하려면 먼저 편수지침에 해당 한자를 포함시켜야 하지만, 초등용 한자가 여기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2014년 새 교육과정을 소개하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추진하기로 하고, 2016년 말 “한자 300자를 선정해 2019년 초등 5~6학년 교과서부터 주요 학습용어를 한자로도 함께 표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한자교육 도입을 진행하자 한자교육 단체와 사교육업체 등 일각의 찬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전교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같은 단체를 비롯 전국 교육대학 교수들, 시도교육감협의회 등 교육계 대다수가 강하게 반발하였다.

주된 반대 이유는 초등학교 한자 교육 도입이 학생의 학습부담을 증가시키고, 문해력 신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불필요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 등이었다.

교육부가 정책을 폐기하면서 ‘국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는 추상적 이유만 밝히고 있는 점은 다소 의아스럽다. 폭넓은 반대 의견에도 강행 입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여론과 별개로 한자병기 반대 쪽이 제기한 주장과 근거의 합리성을 수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초등교사로서, 국어교육 전공자로서 이번 교육부의 결정은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한자교육이 꼭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초등학생들에게 적합하지도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이들에게 올려놓으려던 무거운 짐 하나가 덜어진 셈이다.

사회의 변화 발전에 따라 점점 더 학교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가르치라는 각계의 요구가 드높다. 그리고 개중에는 사회적 합의와 신중한 검토 없이 정부의 정책이 되어 학교현장에 ‘투하(?)’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러한 정책 추진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어른과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수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학교에서 그런 것들을 다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선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 교육학의 오래된 연구 주제 중의 하나다. 이른바 교육내용 선정의 문제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배고플 때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탈무드의 이야기는 흔히 거론되는 것이다. 배고픔의 일시적인 해결보다는 항구적인 배고픔 해결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최신 버전은 ‘아이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기 보다는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물고기 잡기라는 제한된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과 꿈의 공간으로 바다를 열어주라는 것이다.

강한 동기와 목표가 있다면, 배우라 하지 않아도 배울 것이고, 개개 사실 뿐 아니라 관련된 방법을 찾을 것이며, 더 폭넓게 배우는 여행길에 스스로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이야기에서 굳이 교육적 교훈을 얻자면 제한된 문제해결보다는 문제해결 방법을 더 중시해야 하며, 문제해결 방법을 가르치기 전에 더 큰 전망(vision)과 열망(motivation)을 가지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급해 하기보다 도대체 무엇을 먼저 가르칠 까, 왜 가르쳐야 할까 라는 성찰적 물음을 먼져 던져야 한다고 본다. 초등교과서 한자정책 폐기를 보면서 든 소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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