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 7점이 새로 생기고(增果), 부암바위에 부처님 상호가 보여

노무현대통령이 늘 소개한 밀양 부은사(부은암,부암)에 상서(祥瑞)로운 일 생겼다.

부처님 사리가 7점이 새로 생기고(增果), 부암바위에 부처님 상호 모양이 나타나다.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안태리 천태산 기슭에 있는 태고종 부은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인도의 아유다국의 왕자보옥(장유화상)과 공주황옥은 부왕의 불교 포교의 뜻을 받들어 바닷길로 동방에 이르니 가락국 수로왕 때 이었다.

수로왕은 장유화상을 국사로 받들고 황옥을 왕비로 맞으니 이 땅에 불법(佛法)수용이 시작되었다.

서기 42년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은 부모를 그리며 부은암(父恩庵)을 창건했다고 전하나 유구한 세월이 지나간 지금 자세한 창건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수로왕의 아들 거등왕이 서기 200년에 창건 했다는 설도 있다.

김해 모은암, 자은암과 더불어 가락의 3대원찰(願刹)이며, 서림사 ·칠불암과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성지이며 또 세간번영을 근간인 효(孝) 법문을 담은 보찰이다.

부은사에는 인도 시바신을 상징하는 맷돌모양의 요니라는 석물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인도에서 가져온 석질이라고 하니 부암의 창건 년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되고 있으며 지금도 요니석에 출산 혹은 생남기도하면 효험이 나타나고 있다.

천태산은 나한(羅漢)이 상주한다는 전설과 함께 불교와는 인연이 깊은 도량으로 그 옛날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부암의 마고석굴에서 수도정진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이 석굴을 찾고 있다.

부암은 임진왜란 때 전란으로 소실되어 폐사지로 있다가 지난 철종 11년(1860년)에 동학사 학송스님이 옛 터를 찾아 초막법당을 지었고, 1960년에는 농산화상이 아래 사지에 극락전과 요사채 전각등을 복원하였고 1981년 자비보탑을 조성하였다.

부암의 석조 아미타불좌상은 현 사지에서 주원택거사가 1930년 약초를 채취하다가 발굴했으며 이조 광희 27년 경주 옥석으로 조성되었고 2009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 476호로 지정되었다.

1992년 성봉스님께서 중간지점까지 차도를 개설하였고 1996년 태우스님이 부은암 주지로 부임하면서 중창불사원력을 세우고 6000일 기도정진하면서 신도들의 지극한 신심을 모아 옛 부은암 소유 임야 십만칠천평을 매입하여 부암에 귀속시켜 중창불사의 기반을 조성하고, 현 사지까지 차도개설, 천불보전, 범종각, 영산전, 삼성각, 용왕당, 요사채, 화장실 및 범종1천관 조성하여 통천범종(通天梵鐘)으로 명명하고 2017년 회향한 여섯 번째 1000일 기도시 경내에 약사불,아미타불,관세음보살상,지장보살상,시왕,포대화상상등 세워 옛 가람을 재현하는 중창불사 회향과 6천일기도를 원만 회향하고 삼보와 사존과 부모의 은혜를 받들어 정법(正法)에 효순(孝順)하는 진리의 법문을 담고 불심(佛心)과 효심(孝心)이 만나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옛 가락국 전통사찰의 면모를 명실 공히 갖추었다.

학송-농산 -성봉 -태우스님(현 부은사 회주, 태고종 원로위원/밀양불교사암연합회장)으로 이어온 약 100년간 불사가 태고종, 밀양 천태산 부은사(父恩寺) 해동제일 보은도량은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보은 기도사찰로 명성이 높고, 천불보전 법당 영단에 부은사의 창건주인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위패를 봉안하고 기도 때마다 제사를 모시고 있다.

부은사 마고석굴(麻姑石窟)은 폭포 바위에서 300미터 산길을 오르면 작은 석굴이 있다. 옛적 마고(麻姑)라는 이름을 가진 신선이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원효스님과 사명스님이 수행했다고 한다.

부은사가 있는 안태리는 양수발전소 앞 태봉(台峰)에 가락국의 왕족의 태를 묻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안태리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등 천태산은 가야시대 왕족의 탯줄을 묻은 영산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발굴되어 재조명되길 기다리는 태무덤이 경내에 있다.

가야의 흔적은 부은사 뒤편 커다란 폭포암벽(부암바위)에 새겨진 ‘통천도량(通天道量)’이라는 글자다. 하늘과 통하는 곳이라는 이 글자는 가락고찰에 가야불교에서만 볼 수 있다. 가야시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김해 은하사의 종각 옆 바위에도 신어통천(神魚通天)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 부은사 극락전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장방형의 돌무더기 역시 인도불교의 불사리탑 형태를 갖춘 가야사찰의 특징을 보여준다. 역사학계 정설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고대 불교의 숨결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찰이다.

부은사 회주 태우 큰스님은 조석예불을 드리면서 2000년 역사의 보은도량 부은사의 재조명을 통해 가야불교를 연구하고 유물이 더 훼손되기 전에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염원하는 1000일 기도를 드리고 있다.

부은사 주지 지원스님은 “부암에 대한 『삼국유사』등 고서의 기록은 없지만

‘만어사 낙성식때 참석할 스님들이 부암에 묵고 갔다’

‘신라왕이 만어사 방문시 부암에서 쉬어갔다’

‘장군바위에 불족 같은 발자국이 있다’

‘가락시대 왕족의 태를 묻었다는 안태리지명’등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경내에 남아 있는 지름 1M 정도의 주춧돌이 9개가 있던 절터와 7기의 탑과 동암 서암

으로 구성된 대 가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직도 기와와 그릇 조각이 나오는 4곳의

옛 절터 자리가 있고, ‘통천도량’이라 새겨진 부암바위에서 최근 발견된 ‘ 새겨진 부처님 모습’과 80년대 김해 향토사학자가 빌려간 뒤 행방이 묘연한 강희3년(1664년)의 암막새에

‘거등왕·마품왕 ·부암(父庵)’등등의 글자가 보이는 것과 부도전 입구에 있는 옛날부터 내려온 태무덤이라고 불리오는 돌무덤과 부은사 비림(碑林)에 새겨진 김수로왕 창건 기록 과

사찰에 방치되어온 인도 허왕후와 관련되는 요니석물과 풍수지리학자들의 말하는 ‘왕후장상이 나올 수 있는 천태산의 최고 명당이다‘ 등등이

이 모든 정황들이 ‘가락고찰을 만들기 위해 윤색되고 연기되었다’고 일축하기에는 너무

아쉽고, 빌려간 암막새가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한다

사찰 주변에 흩어져 있는 옛터와 지워져가는 가야불교의 흔적인 부암바위에 새겨진 ‘통천도량(通天道量)’ 글귀, 희미해지는 부암바위에 새겨진 불상 , 잊어지는 가락시대 태무덤, 무너져가는 극락전과 영안당보수 및 접근하기 위험한 좁은 사찰 진입도로 등으로 가야불교의 역사문화가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문화재청과 경상남도의 협조를 받아 사찰 주변에 매장되어있는 유물을 발굴하고

명실상부한 가락고찰 복원 및 정비가 될 수 있도록 불자들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정부는 가야불교의 문화유산이 더 훼손되고 오염되기 전에 문화재 발굴을 시작해야한다.

주소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천태로 451-94 부은사

종무소 전화 055-353-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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