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군수 김영만)이 주최하고 옥천불교사암연합회(회장 명안스님/대약사사 주지)가 주관하여 임진왜란(1592년) 당시 왜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다가 순국한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년)와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 ~1592년) 선생에 대한 추모제향을 10월7일 오후 3시부터 가산사(옥천군 안내면)에서 거행했다.

이날 초헌관은 이용범 문화관광과장 아헌관은 유정현 옥천문화원 부원장, 종헌관은 옥천불교사암연합회 회장 명안스님이 각각 맡아 제례를 올리고 내빈과 주민들이 헌화와 분향을 했다.

가산사 영정각(충청북도기념물 제115호)에는 최초의 승병장인 영규대사가 이곳에서 머물면서 승려들에게 학문과 무술을 연마시켰다는 기록(조선왕조실록 선조편)과 함께 대사와 조헌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왜적들의 침략과 약탈에 분을 참지 못해 수백 명의 승려와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친 두 분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8월 18일 순국한 날에 옥천군과 관련단체는 가산사에서 추모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가산사 주지 지승스님 제문]

단기 4350년 음력8월18일 한해치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우리는 모였습니다.

옥천군민의 이름으로 옥천군수가 삼가 잔을 드리나이다.

돌이켜보면 425년 전의 오늘은 금산 연곤평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던 날입니다.

그날 기허당 스님의 의승병 600명과 중봉선생의 의병 700명은 2만에 이르는 왜적과 싸워 마침내 의를 따라 순직하시니, 그 장한 기게는 오늘까지 민족의 가슴 가슴에서 출렁이고 있습니다.

허나 중봉선생의 의병은 시신을 수습하여 오늘에 칠백의총으로 남아있지만, 기허당의 의승병은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하여 까마귀밥이 되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분하고 절통한 일입니다.

바로 이일을 위하여 저 지승은 동분서주로 애를 썼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진 일이 없으니 다만 헙헙한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계종 총무원이 이를 위해 애쓰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중, 칠백의총에서 다시 깃발을 올린 4백 명의 승군단이 나서고 있고, 지난 9월29일 이낙연 총리가 가산사를 방문하여 40분간 머무르면서 800승병에 대하여 아직까지 자리매김이 안 된 국가의 실수를 인정했고 정부가 가산사 영정각의 순국선열문제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하여 희망을 가지는 바입니다.

이 민족으로 하여금 희망이 있는 내일을 기다리게 하소서, 조촐한 제사 음식이지만 하늘에서 이 제사를 굽어보시는 일천오백의 순국선열들께서는 마땅히 흔쾌하게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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