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독립군을 위한 독립자금 총괄책임자였다”

제72주년 광복절 맞은 옥천군 광복회원

제72주년 광복절은 일제치하에서 광복을 맞이한 1985년 8월 15일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경축하는 날이다. 옥천군에는 일제치하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했던 독립운동가 유공자들이 이태구(군북), 이종란(옥천읍), 임분순(군서), 양해승(군서), 이신무(이원), 김옥향(옥천읍) 등 6명이다. 이중 독립군의 자금총책을 맡아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이경수의 아들인 이태구(85·사진)옹을 만났다.

“무엇보다 살아생전 ‘술주정뱅이’로 인식되었던 부친의 오명을 벗게 돼 가족들이 무척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훈처로부터 옥천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전입된 광복회원 이태구(85·군북면)옹은 당시 부친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회고하며 이렇게 밝혔다.

당시 독립군 자금총괄책임자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이경수는 마을에서 매일 술을 먹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며 일제의 눈을 피해 온갖 고생을 하며 독립군들의 자금활동을 도와온 총책이었다.

아들 이태구옹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시며 지나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술 마시자’를 연거푸 반복하며 행동해 ‘미친놈’ 취급까지 받으면서 술주정뱅이로 살아와야 했던 기막힌 사연을 회고하며 당시 아버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부친의 행동이 일제에 짓밟힌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부러 한 책략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늦게 알게 돼 자식으로서 통한스럽다”고 말했다.

부모인 이경수(독립운동가)·박경관(75세 작고)씨의 5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태구옹은 “아직도 부모님만 생각하면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처참함을 차마 기억하기도 싫다”며 “오늘 대한민국이 경제 국가로 성장한 모습을 보시면 마냥 기뻐하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니 흐뭇하다”고 밝혔다.

이태구옹은 당시 집안 배경을 이야기하며 부친의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행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옹은 “경기도 안성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만큼 부농의 집안이었지요. 그러나 나라를 빼앗긴 후 우리 가정은 피폐해졌다. 먹을 것만 남기고 추곡을 모두 팔아서 독립자금으로 술집의 운반책을 통해 전달했던 부친의 이상 행동에 자식들은 이해를 못했으나 어머니는 100% 이해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할 따름”이라고 회고했다.

구더기가 득실득실 생길 만큼 젓갈을 썩혀서 냄새가 진동할 때 페인트통에 조금씩 담아 그 밑에 비닐로 돈을 칭칭 감싸 깔고 독립자금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속임을 했다. 어렸을 적 여러 개의 페인트통이 나갈 때 어떤 용도인지 당시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옹은 독립군 자금총책인 아버지가 술집을 접고 타지로 옮긴 일화를 이렇게 털어놨다.

“어렸을 적 어느 날, 아버지처럼 술을 반 주전자 이상 마시고 술에 취해 쓰러졌어요. 그것이 아버지가 술집을 다른 곳으로 옮겼던 이유였어요.”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허리춤에 벨트처럼 넥타이를 매고 사셨어요.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으신 아버지는 중요직책을 맡은 만큼 언제든지 자결을 결심하고 사셨어요. 언제 어디서라도 일제 고문을 받다가 참지 못해 비밀을 누설할까 그것이 걱정스러웠던 겁니다. 생각만 해도 응어리진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친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내가 명문인 경기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일제에 휩쓸려 잘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들어간 것이 서울 가톨릭신학대학 부설중학교였고, 그 후 동성고등학교, 동경상지대학교 중퇴가 그의 최종 학력이 됐다.

“독서량이 많아 한 트럭도 더 읽었다”는 이 옹은 “지금은 두 눈이 약시로 전혀 보이지 않아 조카가 1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와 읽어주고 있다”며 “외할머니, 할머니, 아내를 병간호하다 혼기를 놓친 장녀가 나를 돌보고 있다”며 회한을 털어냈다.

이 옹은 “부친이 돌아가신 것은 아마 50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당시 모스크바 공산당 본부 지시를 받던 민청(이하 민주청년연합)에 의해 독살됐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정보였다”며 “좌익계통에 의해 독살된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이 나라에 애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국가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했다.

현재 독립유공자들의 모임인 광복회원으로 활동하는 이 옹은 3년 전 작고한 아내(당시80세)와 2남 3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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