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찾아서

 

독립운동을 설립목적으로 만든 대한민국 임시정부, 3·1운동 직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하여 선포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일본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항일독립 전쟁은 의열 투쟁과 독립군단체지원·광복군창설 등의 군사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군사 활동으로, 1920년 상하이에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와 비행사 양성소 및 간호학교 등을 세워 군사를 양성하였고 중국 군관학교에 군인을 파견하여 교육시키고 만주에 있는 독립군을 후원하였다고 전해진다.

의열 투쟁의 대표적인 본보기는 이봉창(李奉昌)과 윤봉길(尹奉吉)의 의거이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의 도쿄의거[東京義擧]는 실패하였으나, 4월 29일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는 일본군 사령관 등 20여 명을 살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 한국독립에 대한 여론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렸으며, 아울러 임시정부는 일제의 보복을 피해 여러 곳으로 이동해야만 하였다.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방문한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고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몰라도 저절로 그때의 마음을 알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중국 정부 측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현재 살고 있는 중국 현지인들의 집에 빨래가 널려 있고 어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임시정부의 지도 이념인 자유주의 이념과 삼균주의 이념은 1948년 대한민국헌법에 반영되어 광복 한국의 기초이념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김포시에는 ‘애기봉’ 이라는 산이 있다. 그곳에 가면 북한이 보인다. 땅은 그렇게 나눌 수 있지만 민족은 나눌 수가 없다. 지금 그렇게 나뉘어 있으면서도 우리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는 지구에 하나 남은 분단국가이다. 땅은 나뉘어도 민족은 나뉠 수 없다

한민족이 둘로 나뉘어 서로의 부모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슬픔이다.

5년 전의 인도네시아에서 해외봉사를 하던 중에 인도네시아 고위공무원이 내게 질문하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당신의 나라는 왜 형제끼리 싸우고 남북으로 갈라져 삽니까? ” 라고 내게 질문을 했었다.

그저 나는 줄곧 평화를 주장 해 왔다. 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 하면서 평화는 내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각이 많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변 하겠는가?

통일은 우리민족의 숙명이자 우리시대에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면 넘지 못 할 벽이 없고 이루지 못 할 꿈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여하튼, 이번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방문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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