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성북동에 있는 동방불교 대학을 입학한 것은 청주 보현사 원봉 스님으로부터 ‘혜철’이란 법명을 받은 뒤, 선암사에서 수행자 교육을 마친 뒤였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태고종 종립 동방불교 대학 범패과를 가기 위해 미로처럼 나있는 인생길을 돌고 돌아서 그곳까지 왔던 것이었다.
동방불교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자신과의 싸움이 너무도 힘겨웠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 중반에 이른 나이였으니, 사가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 때문에 수행하는 데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2년이란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대전에 내려가 택시 기사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마련해야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도 다 있었다. 승복을 입고 택시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손님들이 공부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며 시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받은 고마운 은혜, 지금까지도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께 합장을 한다. 모든 인연의 끈은 돌고 돌아가는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여차저차 시작한 승가교육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범패과는 염불을 잘해야 했다. 나는 음치였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을 정도로 리듬과 박자에 자신이 없었다. 염불 공부가 일반 노래들과 상관은 없다고 치더라도 기본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일요일이면 성북동에 있는 창덕궁을 돌며 천수경을 외우고 반야심경을 외웠다. 염불을 하는 것인지 가족이 그리워 우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내 목소리에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창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했다. 두 아이 모두다 막 사춘기로 접어드는 나이들이니 만큼 얼마나 방황이 심할까도 싶었다.
‘출가한 마당에 가족 걱정이 그리도 많았는지……’
마음의 변화가 일 때마다 천수경을 암송하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천수경'의 천수(千手)는 천수천안(千手千眼)의 약칭이었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갖고 계신 관세음보살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은 천의 눈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보시고, 천의 손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마침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자비의 부처였던 것이다.
그래서 목이 메여오고 가슴이 쓰라릴 때마다 관세음보살님의 천개의 손과 눈으로 어루만져주시길 빌고 또 빌었다. 
 <혜철스님 자전 에세이> 『스님은 중매쟁이』는 2012년 봄날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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