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행자수계식을 모두 마치고 부처님께 올린 공양을 내려와 신도들과 친지들이 정담을 나누며 먹는 동안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절을 했다.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시던 어머니 스님은 눈물을 흘리시고 계셨다.

“이제 점심 공양을 하자. 갈 길이 바쁘다.”

나직한 어머니 스님의 음성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행자 수계식이 끝나면 곧바로 순천 선암사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곳에 가서 행자교육을 받고 정식 스님이 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조금만 더 하다 가겠습니다.” 어머니 스님의 간절한 애원에도 절을 거듭 올렸다. 그 때까지는 천 배와 삼천 배의 절을 하기에는 무리였고, 그 뜻을 속속히 알지도 못했다. 아버지 스님이 살아계실 때 교육하신 말씀이 있어 어렴풋하게나마 기억 할 뿐이었다.

‘백팔 배는 과거, 현재, 미래에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는 절이며, 삼천 배는 현겁이라는 시간 단위에, 천 분이란 부처님이 계신데 자신의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하는 절이고, 삼천 배는 과거의 일천 불, 현재의 일천 불, 미래의 일천 불께 업장 소멸해달라는 참회의 절을 하는 것이야. 그러니 그 뜻을 가슴에 되새기면서 절을 하도록 해라.’

아버지 스님의 음성이 살아 계실 때와 다름없이 들리는 듯 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다 내가 지은 업장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천 배는 해야 부처님의 눈이 조금 떠진다는 말도 생각이 났다.

내 마음 안에 캄캄한 감옥을 지어놓고, 그 안 가득 업장들로 채워 두었던 시간들이었다.

 

한국영상음반협회 지부장을 지내면서 볼 것, 못 볼 것을 다보고 세상이 얼마나 요지경 속이고, 악순환 속에 돌고 도는 것인가를 체험했다. 외국이나 한국에서 불법으로 만들어진 음반들, 영상물을 관리하는 일이 주류였는데, 그 과정에서 비리와 연류 되기에 안성맞춤인 것이었다. 임기 4년인데 2년 정도 지나자, 나는 냉정하고 칼날 같은 지부장으로 통했다. 비리와 불법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곧이곧대로 처신을 했던 탓이었다. 특히 비디오를 취급하는 사업 쪽에서는 음란물을 팔아야만 장사가 된다며 항의가 빗발쳤다. 그런 와중에 금품을 싸가지고 와서 청탁을 해오는 업주도 있었다. 점점 나 자신도 모르게 구렁텅이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알게 모르게 술과 여자들이 있는 곳에서 접대를 받게 되고, 알게 모르게 죄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 아프지 않고 건강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팠기 때문에 더 많은 죄를 짓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목에서 검은 가래가 나오고 몸은 앙상하게 말라가고, 음식을 목에 넘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에 들러도 병명은 전혀 나오지 않고……

그래서 나는 행자 수계식 날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 알고 나자, 부처님께서는 그만 그 감옥에서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참회의 눈물이 분명했다.

 <혜철스님 자전 에세이> 『스님은 중매쟁이』는 2012년 봄날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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