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밤이 깊어갔다. 낮부터 켜놓은 스토브의 열기가 퍼져 동굴 안은 따뜻했다. 점차 동굴 생활에 적응된 탓도 있어서인지 기운이 날마다 달라졌다. 달빛이 동굴 속으로 차고 들었고, 내 머릿속은 양반과 선비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탈 마당에서는 인간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양지와 음지이며, 선과 악이 교차하는 사람의 이면의 얼굴을 체험할 수 있는 마당인 것이다. 그런 탓에 양반과 선비마당에선 두 가지의 미소가 번갈아가며 관중을 사로잡았다. 광대가 똑바로 쓰고 있는 탈은 주름이 휘감은 얼굴에 함빡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은 의식화 된 표정을 상징했다. 하지만 땅에 뚝 떨어져 훌러덩 뒤집혀진 탈의 미소는 공포와 슬픔으로 가득하여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 고통이 배어 있는 가면인 것이다.
바로 쓰고 있는 자의 가면은 삶, 가식, 탐욕, 빛을 상징하지만, 뒤집혀진 탈의 뒷모습은 죽음, 허탈, 어둠을 나타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가지의 미소를 수시로 바꾸어 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미소가 담긴 탈········.’

 

나는 그 탈 마당에 갇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양반이 부채를 들고 정자관을 쓰고 거만하게 여덟팔자 황새걸음으로 나타났다. 선비는 유건을 쓰고 모산대를 쥐고 양반 뒤를 따랐다. 부네가 선비 뒤를 따라 나오면서 선비에게 바짝 다가섰다. 이젠 마당 가득 탈을 쓴 광대들이 모여 한바탕 어우러졌다.
이어 양반과 선비가 부네를 차지하려고 싸우다 결국 자신들의 학식과 신분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양반이 나타나 선비를 가로 막고 서서 부네를 보호하겠다고 자청했다.
“허허, 국추단풍에 지체 후 만강하옵시며, 보동댁이 감환이 들어 자동양반 문안드리오. 그곳이 하도 험악하와 보호차로 왔나이다. 수목은 울창하고 양대꽃이 만발하니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백혈을 토하고 죽어가기에 보호라도 하려고 왔나이다.”
양반이 물러나지 않고 부네의 울창한 숲, 양대꽃이 반발한 그 곳을 지키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부네의 울창한 숲, 양대꽃이 반발한 그곳은 탄생의 근원지요, 탐욕의 시발인 셈이기도 했다. 양반과 선비가 앞 다투어 양대꽃 밭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며 걸진 입담으로 한판승부를 걸었다.

홍기홍기 접접홍기
백옥비단 깃을달고
무자한자 고름달고
뒷집이라 놀러가니
후여훠이
군장밑에 화초밭도
잘뜯어 시집가고
앞집이라 놀러가니
앞밭에 채소밭도
날떨어 시집가고
후여훠이.

울창한 숲, 과연 그 양대밭에 꽃은 피었던가. 이 무슨 음탕한 생각이란 말인가. 젖꼭지가 오롯이 섰다. 몸피마다 반응이 일어나더니 현기증이 일어났다. 참을 수 없는 욕정이 목울대를 가로질러 올라온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누웠다.

<이경 장편소설> 『 탈 』은 불교공뉴스 창간기념 작품으로 2012년 봄날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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