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오래된 집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한바탕 마당을 쓸어내더니 지붕 위를 훑고 지나가버렸다. 물푸레나무 가장자리 끝,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는 매미가 온 힘을 다해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풍경도 몹시 낯이 익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서 외면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어린 소녀가 마루 위에 누워 있다. 나를 몹시 닮아 있는 어린 소녀의 얼굴이다. 두 볼에 포동포동하니 살이 올라있었다.
그러데 귀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지금의 내 귓속인지 어린 소녀의 귀속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 매미가 지랄 맞게 울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매미의 울음이 고막을 지나 달팽이관에 이르는 동안까지도 기분이 멀쩡했었는데 자지러질 듯 찢어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대뇌에 이르렀을 무렵, 곤두박질치던 소리가 꾸역꾸역 귀속에서 흘러나왔다.
“아, 귀가 아파. 귀가 아파 죽겠어. 할머니 빨리 와.”
드디어 울음이 터져버렸다. 펑펑 울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울음소리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집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듣는 사람 없는 울음소리는 괴기스러울 정도로 무서웠다. 귀신 울음소리도 이 보다 음산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울음을 뚝 그치고 말았다.

울안에는 지루한 시간을 견뎌낼 그 무엇도 없었다. 키우던 강아지도 집을 나가고, 토끼 새끼도 잠이 들었으며, 암탉 몇 마리도 들밭에 나가고 없었다. 지친 나는 대청마루에 누워 두 다리를 치켜들고 발장난을 쳤다.
포동포동한 얼굴 위로 한 자락 바람이 머물다가 흩어졌다. 졸음이 몰려왔다. 텃밭에 서있던 밤나무는 짙은 녹색의 수액을 끌어 모아 쌍동밤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풋밤들은 푸른 가시 속에 안겨 토실토실 영글어갔다. 그런 것들조차 바라보는 게 시들했다. 더 이상 내게 흥미 거리가 되지 못했다.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일상, 어떤 변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차라리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몸을 비틀었다가 다시 모로 누웠다. 그러자, 방에서 곰팡이 냄새가 훅 밀려나와 코밑까지 파고들었다. 욱! 속이 울렁거렸다.

 <이경 장편소설 『 탈 』는 불교공뉴스 창간기념 작품으로 2012년 봄날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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