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서둘러 외투를 챙겨 입고 그 동굴로 향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도 꽃샘추위 때문에 코끝이 시려왔다. 동굴은 탈방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고, 한 시간쯤 걸어 올라가야했다. 여러 개의 작은 바위가 즐비하게 서 있는 곳에 이르자,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쯤에 있었을까?’
그런데 뜻밖이었다. 동굴을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동굴 입구가 좀 작아진 느낌이 들었으나, 누군가 다녀갔는지 잡풀이 치워진 상태였다. 약초를 캐는 심마니라도 가끔 들러 온기를 채우고 가는 모양이었다. 동굴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깊지 않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가 몸이라도 틀고 있을 것 같은 범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바람, 구름, 비를 각각 주관하는 부하 삼천 명을 데려왔고,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맡아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켜 나아갔다. 때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서 함께 살았는데, 신웅(神雄)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그래서 신웅은 그들에게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약정된 날까지 햇빛조차 보지 않고 그것만 먹고 견디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마늘은 오늘 날 신령스러운 영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마늘은 쑥과 함께 벽사의 역할을 했다. 결국 곰은 참고 견뎌서 웅녀가 되었지만, 범은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후에 웅녀는 환웅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왕검을 낳았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의 시조는 결국 동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얼마동안 동굴 입구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석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동굴지기처럼 입구에 딱 버티고 서 있는 게 몹시 위압적이었다. 마치 내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목각상과 같았다.
그 목각상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깎은 것으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자명이 설치했다. 자명은 자신이 떠날 것을 미리 생각하고 그것을 설치한 모양이다. 생뚱맞지만 목각상을 봤을 때,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란 조각이 떠올라 구했다고 했다.
자명과 나는 칼레의 시민을 서울 로댕미술관에서 처음 봤다. 칼레의 시민 가운데 우는 시민이란 이름을 가진 조각에 관심이 간다고 하자, 자명은 그 작품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우는 시민의 얼굴이 내 표정과 좀 닮은 것 같지 않느냐고 하면서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 벌어진 백년전쟁 때였다. 칼레의 시민들은 기근에도 불구하고 십일 개월이나 영국인들의 공격에 저항했다. 하지만 프랑스 왕 필리프 6세는 영국군의 강한 방어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칼레 시민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영국 왕 에드워드 3세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때,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들의 대항에 몹시 분개했는데, 그 대가로 칼레시민 여섯 명을 데려오라고 했다. 그들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을 바치라고 한 것이다. 여섯 명은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말고 맨발로 걸어와야 하며, 목에는 교수형에 쓸 밧줄을 메고 와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에드워드 3세가 성문을 열 수 있도록 열쇠꾸러미를 손에 들고 왔다. 슬픔에 잠긴 칼레의 시민들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려고 로댕에게 여섯 명의 모습을 제작해달라고 주문했다. 로댕은 십여 년 동안 이 조각상에 혼을 불어 넣었다. 손동작 하나에도 사람의 감정이 살아 꿈틀거릴 정도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조각상이 취하고 있는 손의 모습은 괴로움, 포기, 절망, 결단, 확신, 수용 등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감정까지 표현하고 있었다. 여섯 명의 조각상 중에는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조각상이 있는데, 이름은 앙드리외 당드레이고, ‘우는 시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얼굴이 어찌나 비탄 속에 빠져 있는지 죽음만이 그 고통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얼굴 표정이었다. 어쩌면 ‘우는 시민’의 표정이 몹시 인간적이어서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그 목각상의 얼굴도 몹시 비통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은 고통의 극치를 나타낸 것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섬뜩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역으로 고통이 해소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칼레의 시민은 브론즈라서 여러 번 떠낸 작품이었다. 그래서 동일한 작품이 세계 곳곳에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로댕의 우는 시민과 아프리카 목각상 그리고 동굴 석기둥 모두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가 석기둥에 기대고 서자, 기울고 있는 달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전해져 왔다.
‘왜 하회탈 복원이 불가능했던 것일까? 각시, 양반, 선비, 중, 부네, 할미, 이매, 초랭이, 총각, 별채, 백정, 떡다리.’
낮은 목소리로 하회탈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이경 장편소설 『 탈 』는 불교공뉴스 창간기념 작품으로 2012년 봄날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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