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벽난로의 불꽃이 커다란 장작더미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벽난로 가까이 다가가 장작을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옹이가 타면서 타닥타닥 소리가 났다. 얼굴 위로 뜨거운 기운이 다가왔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다보면 자투리 나무가 많이 생겼다. 옹이가 박힌 부분은 단단했다. 곪아 있는 환부를 도려내듯 톱과 끌로 깊숙하게 도려냈다. 옹이가 없었다면 나무는 더 많은 가지를 끌어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액을 끌어 올려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었어야 했을 그 결정체가 불꽃이 되어 타들어갔다.
불쏘시개로 불 속을 헤집어 숨구멍을 파 놓았다. 적은 양이지만 연기가 벽 틈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래서 벽난로 근처에는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두지 않았다. 연기가 굴뚝을 통해 잘 빠져 나가고 있는데도 미세하게 그을음이 거꾸로 나왔던 것이다.
불이 모두 꺼지고 온기마저 사라지면 벽난로 속으로 기어 들어가 안쪽 벽에 걸려 있는 그을음을 긁어냈다. 안쪽에 수북하게 쌓인 재를 퍼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채 열기가 식지 않은 벽난로의 느낌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매캐한 냄새가 호흡기를 타고 폐부 깊숙이 파고들면 기분이 몹시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때던가, 검은 그름 한 덩어리가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웠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도 그랬던 것 같다. 때로는 굴뚝에 걸린 그을음처럼, 때로는 열기로 가득 찬 잿더미처럼 모든 것이 소멸되어져 의미 없는 것들뿐이었다.
양지보다는 음지가 더 편했다. 어렸을 땐 사진관 암실에서 잠들었던 때가 많았다. 작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숨어든 곳은 사진관 암실이었다. 자명은 어려서부터 필름 인화하는 공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붉은 전등이 켜져 있던 암실은 몹시 더웠다. 그런데도 그와 함께 암실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그곳은 모태의 본능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따뜻함과 포근함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피난처였던 것이다. 벽난로와 사진관 암실이 아무런 연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벽난로를 보고 있으면, 암실에서 잠들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무슨 이유였는지 자명도 나처럼 밝은 빛을 싫어했다. 암실에서 틀어박혀 지내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빛에 대한 반감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보다 그가 빛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좇아가는 그의 눈빛에는 언제나 광채가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작업대로 위에 놓인 조각도를 움켜쥐었다 내려놓는다. 아랫배가 뻣뻣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왔다. 조각도를 쥐고 있는 손이 부드럽지 못했다. 오리나무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 움직였다. 채 눈을 감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 그 위에 나타났다. 부르르 떨고 있는 입술과 눈물이 가득한 핏발선 두 눈도 보인다. 울부짖는 여인의 얼굴도 있다. 한 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끝내 등을 돌린 두 아들의 얼굴. 그들을 지켜봐야했던 노인의 수척한 얼굴도 나타난다. 머리가 어지러워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언제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까.’
작업대에서 일어났다. 숨이 찼다. 가슴이 갑갑하다 못해 울렁거렸다. 오리나무에 생각이 갇혀버렸다.
그때였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바로 뒷산 동굴이었다. 그 동굴이라면 모든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을 죄어오는 이 느낌, 미끈거리는 얇은 막이 점점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이 느낌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가야 했다.
그 동굴을 알게 된 것은, 동네 친구들로부터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하던 날이었다. 그 날, 무작정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졌는데,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경 장편소설 『 탈 』는 불교공뉴스 창간기념 작품으로 2012년 봄날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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