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옥천] ‘플라스틱 블록’ 활용 ‘디지털 산수’ 개념 재창조
한국현대미술사의 새장 연 발군 작가 ‘자리매김’
옥천 귀촌 20년 “문화정책자문·무한 봉사하고파”

“이번 수상이 대부분의 작가들이 서양미술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세태에서 빗겨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기쁨이 무엇보다 컸어요.”

올해 제29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옥천군 동이면에 귀촌한 황인기(64·前성균관대 예술대학 교수) 화백이 이렇게 수상 소회를 밝혔다.

한국화단에서 ‘플라스틱 블록’으로 회화의 한 장르를 세운 황 화백은 “유행을 따라가는 현 세태에서 독자성·창의성을 갖고 서양미술에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지난 1975년 대학 졸업 후 창작활동을 해온 지 어언 40년이 된 황 화백은 “‘이중섭미술상’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축하해주는 대중적 인상이 강해 여러 곳에서 축하인사를 많이 들어 감사했다”며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받은 ‘올해의 작가상’이라든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출전해 초점을 받은 일은 전문가적 측면에서 의미를 담고 있어 또 다른 느낌 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가 작품에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플라스틱 블록’입니다. 그것으로 하나하나 작업하여 거대한 산수화 등을 그려내곤 하지요. 이 작업은 컴퓨터가 접목된 작품 활동입니다. 이 작업 이전에는 큰 그림을 못을 박아 그려내는 작품이었는데 리벳(금속판을 잇는 못 종류)으로 합판에 박아 십 수 만개를 사용해 표현해 내는 그런 작품 활동을 했지요. 그러다가 지난 1997년 무리를 하는 바람에 덜컥 몸이 고장나버렸어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전환한 것이 일명 ‘레고’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블록’ 작품 활동입니다.”

이번 제29회 ‘이중섭미술상’ 심사를 맡은 김호득 위원장은 “황인기는 ‘디지털 산수’로 회화의 개념적 지층을 포스트모던답게 전환, 한국현대미술사의 한 장을 새롭게 제시한 발군의 작가다. 최근 유행처럼 번진 회화의 ‘디지트(digit)’화 작업은 일정 부분 황인기의 영향이라 말할 만하다. 작가는 플라스틱 레고(Lego), 인조수정, 건축자재 등을 사용, 기존의 전통산수화를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정신으로 재창조했다. 최근 설치작업도 병행하면서 젊은 세대 못지않게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자유로움 역시 보기 좋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은 크고 거대하다. 작은 손톱만한 ‘플라스틱 블록’들이 모여 대자연의 절경을 이뤄내는 그의 작품을 보면 무한한 그의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다.

40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그의 자택 창고 안에는 수백 점의 작품들이 정갈하게 표고 된 채로 가지런히 정돈돼 있어 마치 그의 성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놀라울 정도다.

그의 작품 중에는 ‘스와롭스키’의 인조 수정(크리스털)을 하나하나 박아 만든 산과 계곡을 표현한 진경산수화인 ‘오래된 바람(2009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또한 색깔에 제한(검은색, 회색 등)을 둔 실리콘을 사용해 만든 ‘오래된 바람(초당)’ 등이 벽에 기댄 채 웅장한 자태를 선보이며 그의 미지의 작품 세계를 투영하고 있다.

“충주에서 10년, 서울에서 10년, 미국에서 10년, 다시 서울에서 10년 그리고 옥천에서 20년을 살아왔어요.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역시 옥천입니다. 그러니까 20년을 살았겠지요. 남들이 보면 멋도 없는 집을 여러 동 지었다고 하지만 역시 집은 보여주기가 아닌 기능이 우선하는 집일 겁니다. 이곳에서 가장 자연을 가까이 접하며 좋아하는 산천과 하늘과 환경을 우러르며 사람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지요.”

그는 나직이 말했다. “충주에서 10년을 살았고 가업이 망해 서울로 쫓겨 올라오면서 ‘생각 많은’아이로 자라났다”라고.
“아주 부유하게도, 아주 형편없게도 살아보면서 돈이라는 게 내 주머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었구나하고 크게 깨달았지요.”

황 화백은 “제 작품 세계는 이제껏 해오던 것을 바탕으로 펼쳐나갈 수도 있고 해오던 방식과는 반대로 접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그는 “동이면 폐교를 얻어 20명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모두 미술학도들로 작업 활동을 돕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상생하는 생활을 했다”며 “지금 제자들이 성장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제자도 있어 마음 뿌듯하고 학생들 속에서 자란 아들이 오죽하면 ‘나도 고아 중 한사람 아닐까’라고 할 만큼 친근한 감정으로 지금도 찾아오고 연락하는 제자들이 많다”고 행복감을 드러냈다.

황 화백은 자연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을 벗 삼아 살다보니 어느 새 오래된 바람처럼 옥천서 살아오면서 지금껏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인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옥천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미술 강의나 어린이 교육을 위해 무료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정책에 대한 자문이나 봉사를 하고 싶어요.”
가족으로 아내 윤소희(59·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한국음악과) 교수와 1남을 두고 있다.

◇황인기 약력
·서울대 미대회화과 졸업(1975)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졸업(1981)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1992~2016)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황인기’ 전시. 베네치아 비엔날레(2003), 바젤 아트페어(2004), 광주비엔날레(2006), 런던사치갤러리 ‘Moon Generation’ 등 전시(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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